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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에세이] 라면을 끓이며

by 두목의진심 2016.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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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산에 사는 그의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유명세를 치른 <칼의 노래>조차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누군가가 그의 필력을 치켜세우는 글 내용을 종종 듣던 터라 궁금해했다. 회사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다 얼마 전 책을 사면 냄비를 주다가 논란이 되었던 <라면을 끓이며>가 눈에 띄었다. 사실 제목보다는 그의 이름을 보고 그의 문장을 맛보고 싶었다. 거친 갱지 표지에 러프한 인물 스케치가 그다지 호감적이지 않아 작가에 대한 유명세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은 책이다.


어쨌거나 <라면을 끓이며>오래전에 절판된 그의 작품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산문을 가려 뽑고, 새로 쓴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절판된 작품에 대한 갈증은 큰 법인데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독자는 기다렸을 법하겠다. 하지만 나는 쉬 읽히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글이 시선을 따라 쉬 읽히지 않으면 머리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힘들어지고 책을 덮는다. 어떤 책들은 그렇게 여러 번 도전하듯 읽기도 하는데 이 책이 그랬다. 단숨이 아닌 긴 호흡으로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의 첫 작품을 읽었다.


<라면을 끓이며>의 내용은 사실 제목과는 크게 연관되지 않고 다양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물이나 관념들의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고 있다. 그의 철학에 가까운 관념들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어렵고 이해되지 않고 겉돈다. 그래서 어렵고 지루하다. 예찬에 가까운 일산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기자로써 세상을 떠돌던 이야기, 세월호와 죽음과 돈에 대한 이야기, 여자, 밥, 발, 손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그의 사유. 특히 故 박경리 작가와 김지하 시인의 관계는 흥미로웠다.


화려한 미사여구의 군더더기를 제외한 깔끔하고 짧은 단문으로 엮어나가는 그의 문체는 있는 사실을 설명하듯 객관화 시키고 있다. 그래서 단조롭다. 간간이 가슴을 흔드는 멋진 문장을 만나기는 하지만 개인의 삶에 빗대어 연속성을 갖지 않고 단편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다. 기대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남매들이 더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p34 <광야를 달리는 말>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p72 <밥1>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p176 <세월호>


"사람이 길을 버리니, 길이 또한 사람을 버리는 것이어서, 옛길은 이제 적막하고, 새길은 또 옛길이 되어간다."-p302 <길>


"봄에는, 봄을 바라보는 일 이외에는 다른 짓을 할 시간이 없다. 지나가는 것들의 찬란함 앞에서두 손은 늘 비어 있다."-p361 <잎>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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