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이 책이 시각 장애인 변호사의 이야기인지. 그저 운명에 맞서는 그저그런 자기계발서쯤으로만 생각했는데 읽고 보니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사지가 불완전하게 태어난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과 문체가 비슷하다. 이야기하듯 자신의 장애와 그런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얽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 나간다. 나 역시 중도에 장애를 입고 좌절을 경험한 사람으로 <운명 따위 이겨주마>는 많은 공감대와 현재에 안주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동시에 던져 주었다.
저자인 오고다 마코토는 시각 장애인 변호사로 12살에 녹내장으로 시각 장애인이 되었다. 우리는 앞을 볼 수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어떠한지 간단히 눈을 감는 정도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 상상하기 힘들정도가 아닐까 싶다. 멀쩡이 움직이던 사지 육신이 한순간에 움직이지 않았을때의 당혹스러움을 겪은 내 경우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헌데 볼 수 없다는 것은 이보다 훨씬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보이지 않음으로 한발짝도 내딛일 수 없는 두려움, 불안함 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자는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8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운명 따위 이겨주마>는 "시각장애인인 내가 변호사가 된 이유"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유?" 무슨 이유가 있나 싶었는데 마지막 장 "벽을 눕히면 길이 된다"을 읽으면서 부제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특히 "장애인이 살기 좋은 곳은 비장애인에게는 안심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말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나는 가끔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온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솔직히 일본은 장애인에 대한 처우나 복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은 놀라웠다. 우리나라 역시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있으며 기업이나 공공기관에는 장애인 의무고용이 법으로 되어 있지만 장애인 고용은 말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장애인 복지관뿐만 아니라 여러 장애인 복지관에서조차 장애인 근로자는 거의 없다. 나 역시 근무한지 3년이 넘은 사회복지사지만 여전히 계약직 근로자일 뿐이다. 법은 있지만 실천이 되지 않는 장애인 차별금지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타고난 긍정적인 성향과 부모님의 교육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그의 대처하는 자세는 가히 저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 도전이나 둘 모두 시각 장애인이면서 결혼에 이어 출산, 육아까지 해나가는 걸 보면서 정말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딸 고코로는 그의 바람대로 부드럽고 강인하며 넓은 시야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단언하건데 올해 손에 꼽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는 과보호를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매사에 엄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앞으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은 뭐든지 하게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라'는 상식에서 나온 가정교육 방침이었던 것이다."-p98 <되도록 스스로 하라는 가르침>
"산에서는 우는소리는 통하지 않는다. 도중에 아무리 지쳐도 결국은 자기 발로 나아가지 않으면 고비를 넘을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 힘에 부치는 그 지점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다음에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의 경험은 자신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이 된다."-p103 <일곱 살, 후지산에 오르다>
"장애인은 아무래도 사회에서 고립되기 쉽다. 누군가가 악의로 장애인을 쫒아 내서가 아니라 장애인의 실정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판단하는, 그런 사소한 몰이해와 무관심 때문이다."-p131 <대신 싸워 준 친구들>
"나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 일을 통해 한 가지 진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는 대게 자신이 허세를 부리거나 불필요한 경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남이 나를 믿어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나부터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남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나부터 그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p200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
글 : 두목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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