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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에세이/일본] 재일의 연인 : 내가 대답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

by 두목의진심 201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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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적" 부분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반한(反韓)이나 반일(反日) 같은. 그러면 누군가는 또 그럴지 모른다. 왜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침략당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민족이라고. 이런 피해의식에 휘둘리는 민족적 의식은 어디서 오는걸까? 사실 개인적으로 애국심은 털끝만큼도 없고 다만 대한민국에 세금내고 사니 국민이라는 개념적 정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데 한일전이나 일본과 관계된 정치적 상황에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무시하지 못하고 불끈 애국심이 불타오른다. 우습게도 말이다.


<재일의 연인>이라는 책을 읽었다. 솔직히 일본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요즘 역사에 심취해 있다보니 더욱) 띠지에 있는 "재일코리안을 향한 당신의 혐오감은 도대체 뭐야?"라고 누군가에게 따지듯 목소리를 높이는 문구에 호기심이 일었다. 왠지 누군가 꽤 일본 내 심각한 혐한 분위기를 전하려 하는게 아닌가 싶어서다. 뭐지? 이 기분? 사실 재일코리안이라는 단어는 처음 접했다. 주로 재일동포라든가로 지칭하곤 했는데 새로운 신종어일까? 맺음말을 보기전까지는 궁금했었다. 정치적 부분을 제외한 의미라는 점이 꽤나 근사하다.


어쨌거나 <재일의 연인>은 일본의 현대 미술가 다카미네 다다스가 일본인의 입장에서 그의 연인 재일코리안 2세 K양과의 일상에서 종종 느껴지는 "민족적" 근원에 대한 궁금으로 시작된다. 물론 띠지에 나온 것처럼 K양이 따지듯 던진 "재일코리안을 향한 당신의 혐오감은 도대체 뭐야?"라는 질문에서 저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상당히 의미가 있는 내용이다. 저자 역시 정치나 국가로부터 자유롭고 중립적인 인간이라는 점을 지양하는 부류였지만 K양의 끊이질 않는 민족적 뿌리찾기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면서 그의 삶 안으로 그런 의미를 끌어 안는다.


그러면서 일제 강제 징용의 상흔인 망간 기념관의 한 동굴에서 좌충우돌 벌어지는 그의 리얼 전시작품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되고 그 역시 한국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강제 징용의 현장에서 일본 현대 미술의 정점에 선 작가가 정치와 이념이 꼬일대로 꼬인 일본 내 재일코리안을 주제로 전시를 한다는 점이 묘한 감정을 준다. <재일의 연인> 전체에 걸쳐 한국이나 일본의 정치적이나 감정적 이야기는 다루지는 않는다. 그저 망간동굴이라는 특징적인 장소를 통해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일, 재일코리안이 관장으로 있는 일제 강제징용의 현장을 전시관으로 꾸미는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느끼게 되는 재일코리안과의 거리감을 담담히 적어 나간다. 히 <2장 재일의 연인> 중 "K로부터 온 편지"의 내용은 한국사람으로도 일본사람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K양의 불완전함에는 공감되면서 가슴이 먹먹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국가 따위는 잊어도 되는 "중립적 지구인"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나 감정의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뭔가가 존재하는 한 재일코리안도 재한코리안도 아닌 어정쩡하게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의 출생에 구애받다가는 점점 소수파가 되어 손해만 보는 건 아닐까. 한국어보다도 영어를 공부해서 점점 세계적으로 기회를 넓혀가는 쪽이 득일 텐데. 빨리 국가 따위는 잊어버리고 '익명의 지구인', '중립적 존재'가 되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p53 <겹겹이 쌓인 국제 감각>


"때때로 재일코리안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서 '그곳에 있는 모두 같은 재일코리안으로서의 나'가 될 때, 공백을 지닌 불완전한 나 자신과 마주쳤어. 동시에 그것이 소용없는 일처럼 느꼈어. 나는 완전한 나인데도 '재일코리안으로서의 나'는 불완전한 나구나, 하고 느껴지면서 자신감이 사라졌지. 그리고 재일코리안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다른 재일코리안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나'가 드러나지 않아." -p152 <K로부터 온 편지>


"나는 천재를 믿지 않지만 '천재적 순간'이란 존재하며, 그것을 위해 계속 작품을 만들어나가겠다.'라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만." -p182 <망간일기5 : 10월 11일>


"앞으로 '전체'로서의 '재일코리안'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재일코리안은 더 이상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혈육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망간 일기에서도 썼듯, 나는 처음에 이 선생을 '재일코리안'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것을 허락해준 이 선생 덕분에 '재일의 연인'은 가까스로 작품으로서 성립할 수 있었다. '베이비 인사동'도 마찬가지다." -p253 <맺음말>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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