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역사/문화/세계사] 세계사 브런치: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by 두목의진심 2015. 9. 15.
728x90

 

학창시절 역사는 중요한 건 알지만 참 애정이 안가는 과목중에 하나였다. 아마도 학교를 들어가기도 전부터 위인전을 비롯한 국내 역사서나 세계사쯤은 전질로 읽어줘야 훌륭한 인재로 거듭나기라도 하다는 듯한 어머니의 강요가 중압감에 시달리게 만들지 않았을까. 뭐 어쨌거나 학창시절에 깨닫는 역사란 국가의 탄생이나 흥망성쇄를 이뤄내는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여인, 영웅 혹은 배신 같은 것들을 통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펙타클한 드라마가 아니라 그저 왕의 순서를 외우거나 시대별로 중요한 부분들을 암기하는 과목이었으니 그닥 애정이 생길리 만무하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롯해 세계사에 재미를 느낀다.


이런 역사에 대한 사유(思惟)는 아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답사기" 시리즈를 통해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그냥 스쳐지나던 문화재나 유적들에 관심이 생기고 재미있어졌다. 비단 인문학 열풍을 넘어 광풍이 몰아치는 요즘이 아니더라도 대하 드라마나 역사 다큐 등의 문화콘텐츠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 유명한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인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라서 활자로 된 국사나 세계사는 방대한 내용이 부담이었는데 어쩌다 <세계사 브런치>를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53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두께 앞에 내심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은 고민에 망설였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고 꽤 여러 번 놀랐다. 엄청난 두께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끝장을 보게 된다는 점과 이런 방대한 내용을 깊이가 있으면서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직업이 회계사라는 점이다. 역사적 내공이 장난아니다. 회계사가 참 편하고 시간이 널널한 직업인가. 그리고 마지막은 나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정말 무식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세계사 브런치>는 고대의 각 문명의 발상을 비롯한 그와 얽혀있는 이야기들과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지나 버라이어티 한 중국사,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과 프랑스 또한 영국, 프랑스, 미국의 혁명 이야기를 아우르며 마지막으로 역사에 관련된 정의로 마무리를 짖는다. 게다가 중간중간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빗대 꼬집기도 하는데 작가의 실랄함이 완전 공감된다. 두께만큼이나 실로 엄청난 이야기들의 만찬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맛있다.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 중세의 그리스나 로마의 이야기가 뜻하지 않게 더 깊어지는 뿌듯함이나 로마가 변방의 늑대 젓을 먹고 자란 아이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의 놀라움이나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마무리하기 위해 고자를 선택했다는 재밌는 이야기나 저자가 서두에 언급하는 아직은 미국이 쇠퇴의 길을 걷지 않을꺼라는 사견(私見)이 미국 가진 역사의 깊이를 볼 때 아직 애송이라는 점이 훅 와닿으며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은 어느 챕터를 펼치더라도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첫 장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마치 인문학적 상식의 선을 무궁히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뜬금없이 저자가 문득 던진 질문인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느 장소와 시대를 선택해서 돌아 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에는 물론 국사나 세계사의 전반을 두루 꿰고 있어야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내 짧디 짧은 지적 수준으로도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신분에 얽매여 출세의 길이 보장되지 않았던 조선보다는 이전의 시대로 가 불세출의 영웅이 한번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계라면 전국시대로 가 삼국지가 아니라 사국지를 만들어 보는 상상도 재미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강추했던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어 봐야겠다. 어쨌거나 이 책! 강추다!


"하지만 모든 비판을 인정한다고 해도 수천 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전설의 미궁을 현실로 다시 불러낸 에번스의 공적 자체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에번스의 '만행'에 분개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고대 유적 위에 사실상 새 건물을 지어 발라 버린 우리나라 경주의 안압지나 불국사 복원 현장의 '참상'을 한번 와서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진정한 유적 훼손이 무엇인지 한번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p92 <신화에서 역사로: 그리스 신화의 역사적 은유> 중에서.


"하필이면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로마를 세운 시조와 같았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끝이 결국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간계일까?" -p229 <로마인의 벤처정신: "고대"가 끝나다> 중에서.


"천도, 다시 말해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가 과연 존재하는가? 전한 시대의 태사령 사마천이 던진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p308 <한 제국의 부상: 사마천의 거대 역사 프로젝트> 중에서.


"확실히, 진보라는 전제 없이는 역사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를 가졌음을 알게 될 때 역사에 동참하며, 과거의 성취를 미래의 성취를 위한 시발점으로 의식하여 활용합니다.(E.H.카 Carr)" -p487 <역사란 무엇인가-역사가의 매니페스토: 역사는 대화다> 중에서.

 


세계사 브런치

저자
정시몬 지음
출판사
부키 | 2015-09-04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45권의 고전을 통해 세계사의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다인류의 수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글 : 두목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