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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에세이]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 - 그래도 아빠는 슈퍼맨이 되고프지 않을까

by 두목의진심 201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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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으례 아빠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처럼. 반드시 그래야 하는. 책을 읽고 소감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덧붙이는게 우습지만 나는 21살에 펄펄 날다 목이 부러져 장애인이 되었다. 이래저래 좌절에 빠져 허우적 댈 시간도 없이 나는 미래라는 녀석을 설계하느라 내 삶에 몰두했다. 몸이 너무 뻣뻣해서 약이 없이는 활동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제대로 움직여 주지않는 몸뚱이를 끌고 다니며 직업을 찾으려 애썼다. 1990년에 다치고 1992년에 미래를 설계한답시고 컴퓨터라는걸 배우고 1997년에 대학을 어렵사리 졸업을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몇 백번의 면접을 치루다 지칠즈음 "언제부터 일 할래요?"라는 황당한 면접을 치르고 디지털애니메이션 제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취업이란걸 했더니 강하게만 느껴지던 모친이 눈물을 펑펑 쏟으시며 좋아라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무 좋아, 뭔가를 미친듯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퇴근하고 집에 갔다왔다 하는 시간이 아까워 회사에서 줄 곧 버텼다. 그랬더니 모친께서 회사에 쫒아 오셔 사장놈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셨더랬다. 장애인을 데리고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미친듯이 일에 매달렸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나이까지 많이 먹으면 시집 올 여자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사나흘을 밤샘 작업을 하면서도 이곳저곳 장애인 단체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조그만 차를 몰고 다녔으니 몸으로 떼우는 봉사는 어려워도 차량 봉사로 자원봉사자들과 가까워질 요량이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생기고 나는 더 열심히 쫒아다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무모할 정도로 다녔다. 사흘을 철야하고 나서 멍해진 정신을 붙들고 정동진 해돋이 차량 봉사를 쫒아 다녔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때는 서른 살을 넘기면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 미친 짓을 몇달을 하고 다니다가 엉뚱하게 같은 사무실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러고 다니는 내가 안쓰러웠다고 한다. 아내는 예뻤고 심성도 더할 나위없이 착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여서 다짜고짜 같이 살면 어떠냐고 들이댔다. 몸이 불편한 나를 뻔히 아내의 집에서 좋아하지 않을꺼라는걸 알았지만 내겐 놓칠 수 없는 찬스였다. 헌데 아내의 대답은 이미 자신이 집에 손을 써놨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했다. 예쁜 얼굴과 착한 심성에 장애도 없는 여자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여자와 산다. 80년만 같이 살기로 하고.

결혼하고 자연스레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결혼한지 2년만에 딸아이가 태어났다. ​아내는 임신 중에 입덧이 심해 갖은 고생을 했다. 덩달아 나 역시. 아내는 모든 먹으면 토했다. 밥도 분식도 심지어 물도. 어느 날 보름달이라는 빵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퇴근 길에 슈퍼며 편의점이며 뒤졌지만 보름달은 없고 둥근달만 있다. 그게 그거지 싶어 사다 주었는데 한 입을 베어 물고 바로 토한다. 다음 날 좀 더 멀리 움직여 보름달을 사다 주었더니 신기하게 먹는다. 요구르트도 딱 하나 에이스만 먹었다. 나는 퇴근 후 매일 이것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 이렇게 엄마, 아빠가 되었는데 아이들 생각은 우리와 참 많이 다르다.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는 사실 요즘 아빠라는 임무에 지쳐있는 내 눈을 확 잡아끌었다. 나와 비슷한 심리를 가진 아빠가 있구나 하는 공감대가 느껴져 반갑기도 하고 해서 단숨에(워낙 몰입도도 좋은 책이긴 하지만) 읽었다. 헌데 읽고나니 사실 이 책은 지친 아빠의 이야기가 아니라 위기의 가족을 위한 해법 같은 이야기다. 다만 아빠가 중심에 있을 뿐. 아빠로서의 힘들다고 투정하는 불평 불만이나 좋은 아빠되기, 아이들과 잘지내는 방법 등의 해법을 생각했는데 아니다. 읽으면서 그런 쉬운 해법이 아닌 부끄럽고 마음을 다잡고 뉘우치게 만들고 있다. 기분 나쁘게.

12편의 책과 12편의 영화를 희노애락이라는 인생의 감정들에 녹여 아빠 혹은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의 날카롭고 고개가 주억거리는 통찰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찌된 일인지 나름 독서와 영화를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데 읽은 책과 본 영화가 몇개 없다는게 희안할 정도다. 그정도로 가족이나 아빠 이야기에 내가 무관심했나 싶다. 사실 나는 아이들만 부모에게 상처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부모도 아이들에게 상처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지금 14살인 딸아이가 5살이었을 때의 일은 내게 아직도 선명하게 서운함으로 남아있다. 호기좋게 사업을 시작하게 1년만에 홀랑 말아먹고 재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떠밀려 내려가 강의를 하면서 2달 정도를 가족과 떨어져 지낸적이 있었는데 근 한 달만에 딸아이와 상봉하는 순간 나는 벌릴 수 있을 만큼 팔을 벌리고 찢을 수 있을 만큼 입을 찢어 웃는데 딸 아이는 무슨 나쁜 아저씨를 본 마냥 엄마의 다리 뒤로 숨어 버렸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서운함이란. 근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튼 이 책은 슈퍼맨이 될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착한 아빠들에게 던지는 이야기이며, 아이들에게 그런 아빠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거기에 더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도 일깨워 주는 책이다. 별 백만스물한개를 준다. 앞으로 찾아 볼 것들에 대한 목록이 생겼다.

박규태 감독의 날아라 허동구 / 스티븐 돌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 /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 /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 / 미리암 프레슬러의 씁쓸한 초콜릿 /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행복을 찾아서 / 김주영의 홍어 / 아멜리 노통브의 아버지 죽이기 /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전만배, 이세영 감독의 나는 아빠다 / 김훈의 칼의 노래 / 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 / 김정현의 아버지/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 봉준호 감독의 괴물/ 조창인의 가시고기 / 오상훈 감독의 파 송송 계란 탁/ 로버트 벤턴 감독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 황동혁 감독의 마이 파더 /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러 월드 / 코맥 매카시의 로드

"아이들이 아빠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인정받는 것이다. 칭찬받는 것이다. 아빠로부터 진심 어린 ​격려를 받는 것이다.

야단맞고, ​벌을 서며, 훈계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안다.

아빠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흥분해서 마구 쏟아내는 말인지,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충고를 조심스레 끄집어내는 것인지를." -p101​

​"아이들은 부모의 복제품이 아니다. 부모의 못다 푼 한을 풀어주는 존재도,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존재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한 인격체다.​ 지구라는 별을 밝힐 또 하나의 빛나는 별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자신의 날개로 창공을 날아오를 따까지 동지가 되어줄 뿐이다.

누구도 그 독립성을, 그 찬란한 발광이나 날개짓을 해치거나 막을 수 없다.

내 기준으로, 내 시각으로, 내 희망으로 아이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 p102

​"가족이란 시간을 나누는 관계다. 시간이란 곧 생명이다.

시간을 나누는 것은 피를 나누는 것과 같다.

같이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웃고 울고 떠들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고

그렇게 함께한 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아빠란 무엇인가? 아빠란 어떤 존재인가?

가족들이 서로 충분한 시간을 나누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독려하며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빠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아빠와 함께 나누는 시간과 추억이다.

인생의 시계는 모두 공평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추억은 시간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 - p278​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

저자
유승준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2014-01-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아빠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슈퍼맨이 아니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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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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