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제15회 BIFF에 초청작이기도 한 '해무 :: 海霧'입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봉준호감독과 각본으로 합을 맞춘 이후 이번 작품에도 함께 각본 작업 후 심성보감독 데뷔작이기도 하지요. 여러모로 마초적인 성격이 짙은 배우 김윤석을 내세워 전작 '황해'의 연장선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족 이야기를 끌어 안고 있습니다. 황해에서 소의 뒷다리뼈를 무식하게 휘둘렀다면 이 영화에서는 손도끼를 거침없이 내리 꽃는 그의 연기는 잔혹하지요. 거기다 세월호 여파도 있었고 '밀항'이라는 좀 민감한 부분이 있기도 해서 그런지 몰라도 흥행에는 다소 실패했지요. 뭐 이유야 어쨌던간에 저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가슴 아프고 절절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서 이런 영화가 흐름에 밀려 흥행에 실패했다는 점이 많이 아쉽네요.
이야기 구성도 탄탄하고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이 정말 좋았습니다. 한국사회가 IMF로 신음하던 시기, '돈'을 벌지 못해 마누라가 놈팽이와 그짓거리를 남편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해도 당당한 그 시절. 어쨌든 가족을 위해, 살기 위해 배를 타야하는 절망적인 삶이 선장으로 하여금 '인간'을 포기하게 만드는 위기를 자초한다는 설정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밀항을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배를 타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조선족들의 '삶'을 통해 과연 무엇이 옳고 그름의 잣대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듯 싶네요.
그냥 사람을 실어 나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강선장을 포함한 전진호 선원들은 정말 뜻하지 않게 단속을 피해 어창에 가둔 조선족들이 가스질식으로 떼죽음을 당하고 그걸 무마하기 위해 잔인하게 도륙 후 바다에 버려야 하는 현실이 어처구니없고 무섭지만 받아들여야 하는데에 이미 이성은 마비되어 사람이기를 포기합니다. 여기에 욕정을 풀길이 없었던 선원들은 여자를 사람이 아닌 배설의 창구로만 생각하게 되고 일은 더욱 더 꼬이고 선원들 사이에 만들어진 극도의 불안감은 결국 서로의 등짝에 칼을 꽃게 되지요. 영화의 전체적인 카타르시스는 배에 갇혀있는 동안의 사람들의 고립감을 극대화하는데 있습니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라는 공동체 공간. 서로 위하고 생각해주던 가족 같던 이 공간에 '돈'과 '욕정'이 생기면서 가족의 공동체 공간은 서로의 위협이 되는 피할 수 없는 공포의 공간이 되버린거죠. 거기에 짙은 해무는 뜻하지 않은 살인으로 인한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의 미래를 표현하면서 점점 더 짙은 나락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인간의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를 포함한 기관실, 좁고 답답한 숙소, 어창, 해무 등 공간을 여러 곳 만듭니다. 이런 폐쇠적 공간이 주는 인간의 불안성은 결국 이성을 잃고 짐승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지요.
감독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한가지 장치를 해두긴 합니다. 모든 것을 지켜 본 조선족 여자인 홍매(한예리)인데요. 연민이 느껴지는 홍매를 통해 인간으로서 마지막 진실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동식(박유천)을 인간성 회복의 희망을 깔아두지요. 가장으로서 가족(선원)을 지키고 싶었으나 이미 인간성을 잃어버린 강선장(김윤식)을 심해 저 밑으로 끌고 들어가는 바다와는 달리 부표하나에 의지한채 해안으로 떠밀려 온 동식과 홍매는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인간성에 대한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홍매를 짐승으로 부터는 지키긴 했지만 그 역시 그와 크게 다를바 없었던 동식은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떠나는 홍매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마음 저렸습니다. 그리고 6년 후의 서울 어디쯤 식당에서 자신이 그토록 끓여주고 싶었던 '전진호'의 라면을 먹고 있는 홍매를 바라보는 동식의 피곤한 얼굴이 한참동안 여운으로 남네요. 암튼 제 짧은 영화평은 '잔인하지만 그런만큼 슬픈 영화'입니다.
글 : 두목
이미지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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