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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

by 두목의진심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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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을 응원한다는 글쓰기 모임 <4050 독서살롱>에서 책을 선물로 받았다. 인근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강좌라 잔뜩 기대하다 더딘 클릭에 대기로 밀려났다. 실망하던 차에 추가로 듣게 되서 기대가 곱절로 커졌다. 그 살롱의 첫 책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을 읽었다.

 

첫 챕터에서부터 반가움이 확 퍼졌다. 본 사람은 다 느꼈을, 삼 남매가 버스에서 내릴 삼촌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이웃집 토토로>의 메이를 둘러업은 채 아빠를 기다리던 사츠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냥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외로움이 아닌 설렐 수 있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므흣해졌다.

 

이어진 또 다른 개구리 이야기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어릴 때, 양평에 있는 친구 이모네로 놀러 갔던 그 때로 시간을 순식간에 돌려놓았다. 떠나기 전날, 생물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했다. 어린애들이 수업 시간에 해부 도구를 장난감처럼 다루게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닌지. 나였는지 짝꿍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우린 개구리 다리에 차마 압정을 힘껏 누를 수 없었다. 그 일이 참사가 될 줄 모르고.

 

기억을 더듬자면, 친구 이모네 집은 모터보트를 타고도 꽤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다. 산을 등지고 앞 쪽은 개울이 있는 으리으리한 전원주택이었다. 2층 혹은 3층 집이었는데 돌로 쌓인 중세의 성처럼 보였다. 정면에는 집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거대한 창이 있었다. 너무 멋진,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집이었다. 섬에 존재하는 감옥처럼 으스스해 보이기도 했던가.

 

8월의 뜨거운 여름 더위에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 개울에서 송사리 잡고, 내 키보다 더 큰 옥수수 밭을 헤집고 다니며 옥수수를 따고 놀았다. 분명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일을 했던 게 아닐까. 몇 바구니를 채웠는 모를 정도로 지칠 때쯤 갑자기 소나기가 더위를 쓸고 지나갔다. 쫄딱 젖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신났는지 놀다 보니 다 말랐다.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다가 자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빛이 소멸한 깜깜한 밤. 넓은 창밖을 보는 순간, 허연 배를 내보이며 붙어있는 청개구리와 눈이 딱 마주쳤다. 피눈물 흘리는 것 같던 그 시뻘건 눈에 소름이 확 돋았다. 전날 해부하던 개구리는 배가 반쯤 열린 채로 교실을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간담 서늘했던 그때 무서움에 한동안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평소 상남자였던 터라 친구들이 옆에 있어 티도 못 내고 개구리의 명복과 잘못했다고 속으로 빌고 나서야 잠들었다. 그 해부 시간은 내가 의사가 되지 않은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을까? 여하튼 그때의 나를 찾는 여행이 됐다.

 

인생에서 사라진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이 가슴 따뜻한 일이라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일까라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상실을 깊게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행복한 시간을 나눈 기억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기억을 채우는 사람이 있다.

 

호수 삼촌. 사실 삼촌의 성도 모른다. 엄마 이종 사촌이라는 정도밖에. 그 시절, 아버지는 자개장롱을 만드는 일을 했다. 월급도 변변히 받지 못하고 기술을 가르쳐 주고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어디냐며 부려먹는 매정한 형 밑이었다. 아버지는 술이 고주망태가 되면 성질을 냈지만 대부분의 날은 그냥 넘겼다.

 

아버지는 무책임할 정도로 무능력했다. 큰아버지 가구점이 있던 건물 옥상에서 살림을 꾸렸다. 벽은 못 팔게 된 장롱이었고 천정은 합판을 얹었다. 비를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고생해서 신설동에서 모란으로 이주했다. 낡고 허름하긴 해도 벽돌로 쌓은 벽으로 둘러진 그런 공장에 딸린 집으로.

 

하지만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큰집에 남겨졌다. 화투에 빠져있던 큰아버지는 조카에게 관심이 없었고 줄줄이 딸린 자식이 다섯이다 보니 큰엄마는 나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내 공책을 본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첫 줄만 쓰고 다음 장 첫 줄 또 그다음 장도 그랬다.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걸 본 엄마는 큰집에 놔뒀다가는 애를 망치겠다며 집으로 데려갔다. 큰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모란의 집은 우리 집이었지만 모든 게 낯설었다. 화장실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알다마는 자줏빛을 잃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데 성냥도 촛불도 밝힐 수 없었다. 바로 옆엔 톱밥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불이 난다면 볼만할 것이다. 깜깜한 화장실은 살짝만 삐끗해도 똥통으로 빠진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두려웠을지.

공장에는 삼촌들이 많았다. 생면부지의 청년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호수 삼촌도 있었다. 1년 동안 떨어져 고생했다는 이유로 보기만 하면 까슬한 턱으로 얼굴을 부비고 안아 들고 해 줬던. 공장 삼촌들은 근처 근린공원에서 공을 찰 때도 발재간이 좋다며 끼워 주며 예뻐해 줬다. 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삼촌들 옆에 슬그머니 앉으면 호수 삼촌은 슬쩍 아나고를 밀어줬다. 아버지와는 다르게 늘 살갑고 따뜻했던 삼촌은 아버지가 술과 빚보증으로 공장을 날리면서 다른 공장으로 멀리 떠났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고 결혼하고 아빠가 된 후 어느 명절 날, 백발 성성한 모습으로 집에 들르셨다. 삼촌은 까슬한 턱으로 부벼주시지 않았지만 반갑게 대해 주셨다.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지만 생각만큼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지금 삼촌은 오포에 사신다. 자주 왕래하지 못하지만 가끔 만나 뵈면 여전히 가심이 몽글몽글 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인생에서 흐릿해진 것들이 선명해진다. 불편하고 어두운 기억도 있지만 밝고 즐거운 기억이 이리 많았나 싶다. 그리고 그리운 사람 한 명쯤 또렷해지는 기분은 참 괜찮다. 가슴 따뜻한 산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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