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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 모성

by 두목의진심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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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번 연휴에는 집에만 있을 거니까 나랑 뭐 할지 생각해 놔, 라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는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보통 모녀지간은 으르렁 댄다는 데 우리 집 모녀는 이리 친구처럼 지낼까. 질투인지 섭섭함인지 묘한 감정이 신경을 건드렸다.

 

넘치는 애교로 아빠들을 딸바보로 만든다는 데 나는 딸바보가 될 수 없었다. 딸은 어릴 때부터 내게 살갑지 않았다. 한 달 넘게 떨어져 있다가 만났을 때도 아빠 하며 달려드는 대신 엄마 뒤로 숨었다. 5살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살갑진 않다. 아빠인 내게도 타인처럼 적당한 거리가 유지하는 느낌. 어쩌면 내게 딸바보 부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럴지 모른다고 여기며 산다.

 

어쨌거나 부성이든 모성이든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 이 책이 흥미로웠다. 심지어 모성을 둘러싼 스릴러라니 더 그랬다. 영화화까지 되었다니 탄탄한 스토리가 기대됐다.

 

나도 질문에 멈칫 했다. 아이들, 그러니까 자식들을 왜 애지중지 키웠냐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할까. 애지중지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 애정 정도 이고, 막 키웠다고 하기엔 부족함 없이 키우려 최선을 다하는 정도랄까. 근데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아끼고 아껴 자식들이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를 먼저 생각하는 행동들에 이유를 찾기란, 참 희한하게도 어렵다. 왤까? 그저 본능이라고 하기엔 복지관에서 그렇지 않은 부모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되니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역사 속에 점이 아닌 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거야. 이 정도로 멋지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28쪽

 

동물적 번식으로만 생각하던 것이 문학적 표현에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의미가 훅하고 바뀌었다. 내가 세상에 온 이유, 그리고 내 아이들이 온 이유. 그건 행복한 일일까.

 

아무렴 어때, 적당히 포기가 담긴 말끝에 사랑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지는 건 사랑받지 못한다는 증거다. 어쩌면 사랑하지 못하는 증거이기도 하지 않을까, 라는 문장이 가슴 끝이 뻐근했다. 무조건 건적인 사랑이 결핍된 딸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모녀의 애정 방향이 심상치 않다. 점점 흥미롭게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 된다.

 

처절하기까지 한 시월드에서 엄마가 원했을 거라는 자기 암시로 온화한 미소를 띤 채 견뎌내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심정은 어땠을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랑의 방식이 가슴을 짓누르듯 답답했다. 오죽하면 엄마를 위해 할머니의 목을 조를 수 있다고 할까.

 

똑 닮은 두 모녀가 갈구하는 사랑을 보면서 답답함이 도를 넘는다. 단호하지만 따뜻한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의 행동이 딸에게 고스란히 전달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딸 역시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라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눈치를 보며 사랑을 받길 바라는 딸의 엇갈린 마음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 가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 역시 아이들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길 바란 적이 수도 없지 않은가.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전하자 '외할머니가 기뻐하시겠다.' 라고 눈물을 흘리며 정원의 수양벚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엄마는 어떤데?’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내가 엄마에게 바랐던 일을 해주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내 모든 걸 줄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걸 바쳐서’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아이는 그런 나를 귀찮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사랑이 충만한 증거다." 302쪽

 

오오. 이것은 짧은 반전인가. 사야카의 사랑이, 모든 걸 바치는 그런 어긋난 사랑이 아니길 바라게 된다. 홍보 글처럼 압도적인 미스터리는 아닐지라도 꽤 흥미로운 소설은 분명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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