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는 순간 감동이 확 몰려왔다. 이름이 선명히 박힌 친필 싸인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이 책이 백만 배는 더 소중해 진다.
쓰면서 많이 아플 것을 알면서도 쓰기로 결심하는, 그렇게 딸을 향한 시인의 마음이 너무 느껴져 시작부터 울컥 한 번 하고 시작했다.
사실 시인에 대해 잘 모른다. 열렬히 시를 탐독하는 수준도 아니라서. 그러다 시 풀꽃을 알게 되고 그 시가 입소문이 나고 유명세를 치르고 나서야 시인이 시골 어느 학교의 교장이라는 걸 알았다. 풀꽃, 이라서가 아니라 조차도 자세히 보며 사랑을 전하는 시인의 학교 아이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키우며 자랄까 많이 부러웠다.
"좋든 싫든 내게는 그 나무가 전부였다. 작고 앙상한 나무지만, 등도 굽고 키 작은 아버지였지만 내게는 그 아버지가 전부였다." 50쪽, 아버지의 등은 넓지 않다
상처되는 말만 골라 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민애가 아버지의 등을 회고하는 글에 가슴이 한참을 따끔거렸다. 내 아버지 등이 그랬고 지금 내 등이 그럴 것이라서, 내 딸 역시 민애와 같을 것이라서 눈물이 났다.
시인은 가난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독자는 그 속에서 가난을 맡을 수 없다. 다만 따뜻함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 덩달아 빤쓰만 입고 동네를 누볐던 내 유년을 소환하는 마법을 부렸다. 그럼에도 사랑했지만 든든하지 않았다는 민애의 아버지가 영락없이 내 모습 같아서 또 마음 한편이 아렸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일게 분명해서.
어려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참아야만 하는 것이라든가, 아픈 엄마를 두고 죽음을 소름 돋듯 느낌으로 알아 챘다라는 문장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한동안 먹먹해야 했다. 민애의 글에서 쿡쿡 찔리는 아빠의 서투름이 전해져 어쩔 줄 몰랐다.
묘하다. 시인의 딸 사랑에는 내 딸에 대한 미안함이 커지고, 딸 민애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는 내 아버지를 떠올려지며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린다. 아버지는 나를 자신을 향한 잘 벼려진 칼이라 생각했을까. 팔순을 훌쩍 넘겨 버린, 나보다 31년을 먼저 지구를 떠날 아버지를 바라 보는 눈이 이제 온기를 띠어도 좋지 않을까.
오십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릴만한 게 없는 나는 아버지와의 지구 여행이 너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자세히 봐야겠다. 민애 마음을 훔쳐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이 책은 아버지가 딸을, 딸이 아버지를 그리는 연작시 같다. 딸의 사십 평생을 그리며 써낸 글에서 내 딸에게 마음이 향하고, 딸이 반대로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존경과 사랑을 담은 글에서 내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끝에 아버지로 내 모습도.
따뜻함과 먹먹함으로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다. 느껴 보시라.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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