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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우정 도둑 - 삶의 궤도를 넓혀준 글, 고독, 연결의 기록

by 두목의진심 2023.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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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도둑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가의 책은 처음이라 읽는 순간 마음이라도 털릴까 싶어 더 궁금해졌을지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서로에게서 몰래 훔친다는, 그것이 우정이라니 이 얼마나 근사한 말인지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40년 지기 친구들이 떠오르고 살짝 얼굴이 달아 올랐다. 어쩌면 우린 서로의 마음을 훔친 우정 도둑이었을지도.

 

작가는 그의 일상과 시간과 공간과 사람 사이를 저공 비행하듯 넘나들며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낮게 나는지 음소거 된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고 조용하다. 그리고 약간의 우울감이 느껴져 편안해진다.

 

담담한 문체 속에 눈에 박히는 구절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당신의 부재가 나를 관통하였다, 라든가 '아직도'가 아니라 '이제야' 찾은 삶일 텐데도, 그리고 쫄지 않는 태도에 대한 존경, 시집을 사는 건 정복할 수 없다는 찝찝함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 지식이 공감의 차원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책들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이해는 공감보다 한 발짝 먼 마음, 불행을 경험한 자들은 저마다의 버튼을 가지고 있다, 같은. 에이 적기도 지친다.

 

142쪽, 버튼과 창문

 

나는 가끔 드라마를 보다가 가슴을 여지없이 뒤흔드는 대사를 만날 때는, 저 작가는 뭘 어떻게 했길래 이런 숨 막히는 글을 쓰는 거지? 라는 통탄의 부러움을 드러내곤 한다. 한데 이 책에서 그런 구절을 셀 수 없이 만난다. 기운 좀 빠진다. 난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만약, 쥐스킨트의 소설과 닮은 '그'가 그라면 그는 다시 명랑해지지 않았다. 그의 글은 가볍지 않고 웃음보단 무표정 혹은 미간에 살짝 주름을 짓게 만드는 그런 깊은 글이라서 살짝 감당이 안 된다는 느낌도 있다.

 

142쪽, 우정

 

우정은 실로 그가 말한 것처럼, 좋은 면을 응원해 주는 미덕보다 부족한 면을 비난하지 않는 덕목이 우정을 유지하는 데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래서 우정은 서로 잘 참아 주는 일일지도 모르고. 이미 40년이나 친구로 남아 있다는 것은 그런 우정이 몽돌처럼 깎이고 깎여 둥글둥글 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분명 그는 도둑이다. 내 마음을 훔쳤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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