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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경제경영] 픽사, 위대한 도약 - 크리에이티브의 불확실성이 기회가 되기까지

by 두목의진심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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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이긴 하지만 8년 정도 디지털 애니메이터로 일했다. 다크서클이 발가락에 붙어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때 수작업이 일반적이던 애니메이션 현장은 디지털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2D에서 3D로 다시 한번 거센 태풍이 불었다.

 

주인으로부터 애정을 독차지 하며 기고만장하던 카우보이를 단숨에 제압하며 날아오르던 우주비행사를 등장시켜 우정과 동료애가 무엇인지 보여준 영화가 있었다. 당시로는 좀 낯선 3D 애니메이션이었다. 그게 픽사의 <토이 스토리>다. 한데 내게 각인된 픽사는 <토이 스토리>보단 참새, 그것도 귀여운 악당인 녀석들이 등장하는 단편 애니메이션 <For the Bird>다. 4분이 채 안 되는 이 애니메이션으로 픽사는 그 해 오스카상을 받았다.

 

<토이 스토리>도 그렇지만 이 단편은 픽사가 꽤 의식 있는 집단이란 생각을 갖게 했었다. 소수자, 노인, 장애, 환경, 편견, 인종차별, 이민자 등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의식을 명확히 영화에 녹여냈다. 그렇게 장편과 함께 늘 단편을 만들며 어느 하나 의미 없이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애정 하는 이유다.

 

<토이 스토리>를 처음 접했을 때 로렌스처럼 나 역시 소름이 돋았다.

 

이 책은 그렇게 픽사라는 불안투성이의 조그만 행성에 첫 발을 내디뎠던 전 CFO(최고재무책임자) 로렌스 레비의 자서전 격인 책이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기사회생의 끈으로 선택해 조지 루카스에서 넘겨받은 하드웨어 회사를 스토리로 승부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거듭나게 만들고, IPO(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 잭팟을 터트리며 디즈니에 흡수가 아닌 동반자 관계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그의 치열하고 행복한 도약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픽사는 이리저리 배회할 뿐 한 번도 제대로 길을 찾은 적이 없는 회사 같았다." 28쪽

 

창조와 열정만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콘텐츠를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논쟁하면서 직원과 리더의 중도를 찾으려 애썼던 그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숨 막히게 이어진다. 자서전인 듯 자서전 아닌 자서전 같은 경영서가 아닐까 싶다. 리더라면, 아니 리더를 꿈꾼다면 읽어야 할 책이라 할만하다.

 

픽사의 미미한 시작과 다르게 그 끝을 창대하게 펼쳐낸 그의 이야기를 홀린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경제 관련 책이 이리 몰입도 높다니 이게 더 판타스틱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정말 술술 익힌다. 읽다 보면 나도 픽사라는 행성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멘토 에피가 했다던 "이미 체스판 위에 놓인 말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다음 말을 어디에 놓느냐다" 란 말은 우리가 살면서 여기저기 터진 상황에 해결보다는 불평불만만 끄집어 낼 때 새겨보면 좋겠다.

 

148쪽, 네 개의 축

 

그랬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그의 말대로  픽사는 디즈니의 외주팀 정도로 홍보되었던 것 같았다. 그 비하인드를 알고 나니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진진 해진다. 그리고 그가 투자은행 관계자를 픽사 내부를 라운딩 시킬 때의 장면은 활자가 아니라 마치 필름이 펼쳐지는 것 마냥 생생하게 그려진다. 1997년 7월, 내가 멋도 모른 채 애니메이션 회사 면접을 갔을 때 복도에 늘어서 걸려 있던 애니메이션 포스터를 보면서 느꼈던 그 황홀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뭐랄까. 신중하고 섬세한 로렌스와 거칠 것 없는 스티브 두 사람의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위대한 도약을 만들어 낸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렇게 치열하게 성과를 일궈낸 후 메련 없이 자신만의 델리를 찾아 떠난 그의 행보는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픽사의 영화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다.

 

334쪽, 나만의 델리를 찾아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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