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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여행] 조금 일찍 나선 길 - 열여섯의 산티아고

by 두목의진심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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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경한 곳을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 흥분이나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동에 제약이 많은 나는 조금 더하고. 산티아고, 그 신비의 땅은 이름만 들어도 아련하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것들을 내려 놓으려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빨려 드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순례길 위에 선 모녀가 각자의 시선을 담은 이야기에 끌렸다. 두 이야기 다 서평단에 신청했다. 비슷한 연배의 엄마 이야기는 어쩌면 휘청대고 있는 내 인생 길에 방향이 될까 싶어서고, 딸의 이야기는 비슷한 또래의 아들과 휘청대는 중이라서 어쩌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자발적'이란 말에 가늠하기 어려운 많은 의미가 있을지 알면서도 '학교 밖'이란 단어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는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혈압을 오르내리게 만드는 중2인 아들이 있어서다. 열네 살, 태윤에겐 그 선택은 어떤 의미였을까.

 

처음부터 묘하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김항심과 태윤, 작가 이름에 엄마에게 있는 성(性)이 딸에게는 붙지 않았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난생처음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순례길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눈빛이 따뜻해서 기뻤다." 46쪽, 수비리

 

딱히 미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시간, 이 순례길에 오른 이유였다는 태윤의 말에 좀 숙연해 졌다. 열네 살, 많지 않은 나이로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학교 이었을텐데 생각과는 다르게 그 후 선명해지지 않은 미래에 또 한 번 마음을 졸였겠다 싶어 나도 모르게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걷는 일 외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순례길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거대한 화살표 같다, 는 태은의 말에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잃어버린 방향들을 찾고 있을까 싶은 생각에 나도 그 길 위에 서있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다.

 

​소란한 마음이 있었을지 어쨌을지 열여섯의 태윤이 발 벗고, 아니 등산화를 조여 매고 나선 이유를 가늠할 순 없다. 하지만 정수리에 내리꽂는 태양에 고작 발끝을 보며 걷는 800킬로 길 위에서 알베르게 깨기 하듯 그날그날 목적지에 다다르는 고통의 의미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엄마, 김항심 씨를 오롯이 동행자로서 혹은 같은 여자로서 느끼는 감정 역시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한 뼘은 더 성장하다.

 

123쪽, 부르고스

 

열여섯 태윤의 혐오에 대한 생각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비단 순례자의 길이 아니라도 우린 매일 현실에서 혐오와 맞서고 있지 않아 설까. 그렇게 '원래'나 '당연'을 외치는 사람들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애써야 한다는 걸 새삼 새기게 된다.

 

"지금까지는 너무 당연 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꾸는 데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사람들의 자각과 동참이 필요하다. 사회가 지어 놓은 한계에 갇혀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현재의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NO'를 'NOW'로 바꿨듯, 조금씩 지우고 바꿔나가야 하는 거다." 151쪽, 칼사다 델 코토

 

또, 사리아에서의 출발은 진정한 순례가 아니라는 누군가의 지적에 태윤의 생각이 울림을 준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자면 어차피 진정한 순례는 그 의미를 잃는 것이라는, 그래서 누구의 순례를 탓할게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순례를 하면 되지 않겠냐는. 열여섯의 순례자에게서 또 하나를 배웠다.

 

207쪽, 포르토마린

 

걷는 것보다 기억의 순간이 더 값지다는 까미노는 내 인생에 어떤 기억을 기록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책을 덮는다. 백세 시대, 이제 반을 조금 지난 시간, 이제라도 내 인생도 '부엔 까미노'가 되길 진정 희망한다.

 

 

앗! 파본이다. 두 장이 묶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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