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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 알고 보면 자신보다 타인을 더 배려하는 너에게

by 두목의진심 202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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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나 됨을, 예민한 촉수를 곤두세우고 모든 것에 레이더망을 펼칠 수 있는 독특하고도 광범위한 감정을 사유할 수 있는 용기다." 8쪽,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대로 행복하면 된다

 

그러면서 모두를 위해 애쓰느라 미처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들, 이라며 예민한 사람들을 위로한단다. 이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저자는 예민함과 둔감 혹은 무던함의 사이에서 애쓰고 상처받는 이들의 심리를 성향, 감정, 관점, 자존감, 인간관계, 성장, 회복에 대한 전혀 까칠하지 않은 42가지 심리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모두가 '네'를 외칠 때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내향인이고, 자기주장이 선명한 사람도 외향인이 아니고 내향인이라는 말은 좀 놀랐다. 나는 반대로 알고 있었고 심지어 나는 그럼 외향인이 아니고 내향인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채로 있어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35쪽, 나는 예민하지만 너는 둔감해

 

MBTI와 관련한 내용 중에 무릎을 치지 않고는 못 배길 문장이었다. 스스로 일거수일투족을 세상에 알리고 말겠다는 의지가 넘쳐나는 SNS 세상에서 나도 잘 모르는 나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그게 전부인 양 까발리는 타인들을 종종 마주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충고의 말이 있을까. 그냥 모르면 모른 채로 넘겨야 할 것도 있는 거다.

 

세상은 '정상'이라는 기준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에 벗어나거나 못 미치는 것들은 모두 비정상이 됐다. 그러자 '정상'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전에 다운증후군 모델을 비정상인데 대단하다, 라는 기사가 포털을 장식했다. 살짝 빈정이 상해 도대체 '비정상'의 기준은 뭐냐며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실시간으로 염색체 개수와 위치를 들먹이며 비정상이 맞다고 깝치지 말라며 죽자 사자 덤비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정상과 비정상이란 갈라치기의 '기준'이 뭐냐고 지적한 것이었다. 염색체의 개수가 다수의 사람이 가진 수와의 비교에서 다르다면 다수의 다운증후군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이 될 수 있는가? 정상의 기준을 다수의 염색체 개수와 위치로 정한다면 기준은 얼마든지 바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격과 관련 지어질 수도 있는 단어 선정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라는 그의 지적에 백퍼 공감을 넘어 울컥했다. 복지관에 영유아 치료를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장애 등록을 꺼린다. 물론 치료의 예후를 희망하기도 하지만 사실 자신의 아이가 '장애인'이란 낙인을 선고받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런 면에서 분명 장애라는 말보다 무질서가 꼭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장애는 낙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니 무질서가 나으려나.

 

47쪽, 인류가 만든 가장 최악의 말은 '정상'이다

 

일찍 철이 든 사람들의 감정을 다룬 내용을 읽다가 딸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딸은 성장기에 과도한 성장으로 성장을 억제하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또래보다 머리통 두 개는 더 컸고,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버스를 탈 때도 출생 시기를 증명할 것들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큰 키 덕에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고, 춤에 재능을 보이며 즐겁게 다니던 재즈댄스 학원에서는 중고생들과 함께 춰야 했다. 매번 딸아이는 그렇게 언니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런 딸은 또래 아이들이 신나게 떠들고 뛰어다닐 때도 "다 큰 애가 철없이 그런다"라고 어른들의 핀잔을 들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주눅 들어야 했다. 그런 딸은 지금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확인받아야 안심한다. 혹시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우리는 살아 있기에, 삶을 사랑하기에 불안하다." 87쪽, 불안은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 당연한 감정이다

 

추락하는 자존감에 대한 표현이 이보다 더 맛깔스러울 수 있을까. 예전 제주도의 한 디자인 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수강생이 별로 없어 전전긍긍하던 학원 원장은 당시 막 유행하던 웹디자인을 강의해 달라고 제주도에서 날아와 면접을 보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줄 테니 내려와달라고 했다. 제주도 푸른 밤에 대한 환상이 있던 터라 잠시 고민하고 제주도 이민을 선택했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강의를 하며 열정을 불살랐다. 그 결과로 수강생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데 원장은 월급날만 되면 자신이 나를 먹여 살린다, 고 으스댔다. 내 덕분에 늘어난 수강생들을 버젓이 보면서. 심지어 내 자격 덕분에 직업훈련교육 기관이 될 수 있었는데도 원장은 자신의 은혜로움 덕분에 살 수 있는 것이라며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결국 3년 만에 더 이상 자존감에 스크래치 내고 싶지 않아 원장을 버리고 서울에 더 좋은 자리로 옮겼다. 덩달아 제주도의 푸른 밤도 버려진 건 두고두고 아쉽긴 하지만.

 

131쪽, 네가 좋다고 나도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좋은 사람이 무조건 나에게도 좋은 사람일 리 없다. 다른 사람과 관계가 나빴다고 해서 나와도 나쁠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 타인에게 묻지 않는다." 176쪽,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할게

 

인간관계의 명확한 정의가 아닐까. 우린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겨도 대놓고 직접적으로 묻기보단 그의 주변인에게 그의 정보를 얻으려 애쓰는 게 일반적이고 그래서 오해나 편견이 생기는데도 대놓고 묻는 건 피하는 이유는 뭘까. 이제부터라도 효과적인 대놓고 물어보는 게 좋겠다.

 

그때, 아내와 연애를 막 시작할 무렵, 내게 호감 있던 아내가 나와 오랜 시간 일했던 후배에게 나에 대해 물었다. 결혼에 진심이었던 나를 봐온 후배는 이때다 싶었는지 나를 친절하고, 유머스럽고, 자상하고, 책임감 강하다는 둥의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찬사란 찬사를 동원해 전했다. 아내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나를 그런 사람이라 믿었다. 한데 그런 찬사와는 반대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말았다. 아내는 땅을 치고 후회하긴 했지만 여전히 나와 살아주면서 득도하는 중이다. 나한테 직접 물었으면 결혼은 하지 않았으려나?

 

나는 인생에 성공이라는 화두를 짊어져 본 적이 있을까. 성공을 말하는 사람이나 지침서 같은 책들은 온통 돈으로 귀결되는 성공을 나는 애초에 욕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생에 목표 따위도 없이 하루하루 근근이 채우는 게 나의 성공이었으려나?

 

성공은 논하는 게 아니라 욕망하는 것, 이라는 저자의 일침은 정신이 번쩍 나게 한다. 욕망이라… 분명 욕심이나 탐욕과는 결이 다를 텐데 나는 그조차도 가져보지 않았음이 바람 빠진 공처럼 차도 차도 멀리 갈 수 없는 처지 같아서 씁쓸하다. 게다가 알려주면 할 자신이 있느냐, 는 되물음엔 '글쎄요' 도 아니고 '설마요'라서 더 쓰다.

 

198쪽, 성공은 논하는 게 아니라 욕망하는 것이다

 

"잃기 전까지는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하는 우리는 멈추는 법이나 쉬는 법을 잊었다." 268쪽, 불안한 과잉 섭취의 시대에서 우리가 할 일

 

불안한 시대에 불안하지 않기 위해 몸과 정신을 불사르는 일이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라는 말에 앞이 흐릿해졌다. 딱히 앞만 보고 질주하듯 달린다거나 성공가도를 꿈꿔본 적은 없지만 나를 위해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로 포장된 삶을 살아낸지라 힘에 부쳐도 멈추거나 맘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어 문장에 감정이 얹혀 한참을 곱씹게 된다.

 

이 책은 다양한 심리학적 기제의 작동 방식을 다루며 저자의 감정 경험을 녹여 내는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 심리에 진심인 책으로 전혀 까칠하지 않아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강추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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