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사회과학] 낀대 패싱 - 튀고 싶지만 튀지 못하는 소심한 반항아들

by 두목의진심 2022. 4. 14.
728x90

 

 

우선 패싱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정치·외교 등의 관계에서 다른 한쪽을 무시 내지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것(나무위키)의 의미다. 낀대가 무시나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는 것일까.

 

공정과 정의 사이에 꼈다, 라는 저자의 세대 구분으로 보자면 낀대는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짬뽕된 세대다. 한데 1970년 생인 내 정체성은 586세대에 가깝다. 붉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눈이 아닌 머리에 쓰고 "조크든요"를 외치는 X세대도 탐탁지 않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X세대나 신세대에 끼지 못할까 슬쩍 발을 담갔던 진짜 낀대라서 흥미롭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소환할 만큼 단순한 세대론의 문화콘텐츠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시작부터 정치 이야기다. 정치 얘긴 가족 간에도 하지 않는 나로선 탐탁지 않지만, 20대에 청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정치에 뛰어든 이준석은 근 20년이 지나 당대표가 된 작금의 정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서태지를 필두로 90년대 문화·예술로 보는 세대 신드롬은 읽는 내내 공감하게 된다. 물론 내 정체성이야 586세대라 불심검문이나 민방위 훈련, 교련, 한여름 땡볕 조회시간에 끝나지 않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들어야 했던 '까라면 까'는 게 익숙한 세대지만 서태지와 에쵸티, 지오디를 아우르는 음악과 유안진, 도종환을 내세운 지란지교를 꿈꾸며 와 접시꽃 당신의 시가 있었고 소피 마르소와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미녀 트로이카 책받침 누나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런 문화·예술의 세대론을 조직으로 연장해 불합리한 조직문화와 꼰대 문화를 설명하는데 공감과 불편 사이를 오간다.

 

저자가 정치적 견해를 일명 586세대를 향해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내는데 딱히 별 관심이 없는 터라 그러려니 했다. 어쨌거나 저자도 일정 부분 편향적으로 보이고 세대를 일반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UN에서 인권 관련 권고 서한을 받은 부분을 정권 비교하는 부분은 저자의 생각과는 다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보자면 그나마 현 정부는 다양한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그전에는 그런 분위기가 조심스럽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이나 전전 정권보다 드러난 인권문제가 많이 보였을 수도 있다. 숫자로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언론까지 통제하던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보다 적다니 말이 되는가.

 

91쪽, 운동권의 유교 DNA

 

"성차별도 과거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다. 기득권은 아버지가 누려놓고, 아버지 세대 보면서 그때 책임을 우리에게 되묻는 건 잘못이다. 가해자는 아버지, 피해자는 아들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119쪽, 남성 역차별 담론

 

나는 586세대로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세대론을 구분하고 갈등을 부추기며 그에 따른 정치·경제적 책임을 추궁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위로는 부모 봉양과 아래로는 자녀 부양에 껴서 허덕이는 중이라서 저자가 말하는 586세대가 민주화 운동으로 다져진 막무가내 투사나 열사로 퉁치는 데는 꽤 불쾌했다. 분명한 건 전 세계가 비슷한 흐름이고 이전 세대 정치가 사회 구조 시스템을 개판 쳐놔서 지금 청년세대가 힘겹다는 데는 동의한다.

 

청년세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젠더 갈등의 논점은 성 평등과 관련해 역시 취업 시장에서 출발점이 다른 경쟁적 구조라는 입장을 남성의 역차별 논리를 이용한 정치적 입장으로 연결 짓는다. 또 진보와 보수는 정당의 지지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세대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얼마나 공정하게 바라보냐에 따른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기존 세대와 다른 청년 세대의 정치 이념을 생각해 보게 한다.

 

141쪽, 586 정의의 배신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하기 힘든 세상인데, 누군가는 친인척 잘 만나고 또 운이 좋아 원칙 없이 정규직화되는 건 잘못이란 이야기다." 193쪽, 벼랑 끝에 몰린 MZ 노조

 

586세대와 MZ 세대 구분으로 이어지는 공정에 대한 이야기로 MZ 세대로 구성된 서울교통공사의 노조 사례는 얼마 전 읽은 마이클 샌들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떠올릴 정도로 닮았다. 이들의 특징은 '탈정치'이고 과거 노동운동으로서의 노조는 지양한다는 입장이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격하게 지지한다. 반면 뒤이은 연금 문제는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현실이므로 OTL을 안겨준다. 어쩔까나 내가 그 586세대인데.

 

195쪽, 2030 노조의 탈정치 선언

 

"디지털 세대는 열등감이 없다. 디지털 세대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215쪽, 열등감 없는 세계시민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날로그 세대로 디지털 세상에서 살면서 아날로그를 추억하는 나로서는 '가난한 나라'는 성장과정에서 당연했다. 육성회비를 못 내서 담임에게 얻어터지는 애들이 반에서 절반이 넘었고, 추운 겨울 교실을 덥히기 위해 고사리 손으로 무거운 석탄을 실어 날랐다. 그렇게 춥고 배고프고 서럽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근데 '가난하지 않은'이란 말로 이렇게 명쾌하게 구분을 할 수 있다니 쉬워도 너무 쉬워 속상하다.

 

"인지적 편향을 통해 경로 의존이 계속되면 확증편향을 낳고, 이는 곧 자기만 옳고 상대는 틀린 이분법적 세계관을 형성시킨다. 대부분의 디지털 서비스는 인간의 경험 세계를 좁게 만들며 편견을 더욱 심화 시킨다." 235쪽, 편향을 키우는 디지털

 

이 책은 젠더, 불평등, 교육, 취업과 노조, 다양성 등 한국 정치·사회 분야를 관통하는 이슈들을 통해 저자의 통찰을 담았다. 한데 저자의 통찰이 내 통찰이 아니듯 더 이상 낀대 세대가 패싱 당하지 않도록 자신만의 생각을 다져보는 계기가 되기엔 충분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