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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by 두목의진심 202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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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왜 태어났냐, 라고 직설적으로 묻는 친구들 노랫가락에 잠깐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그럼에도 뭘 하고 싶지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그나마 반항을 오지게 하던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그래도 죄송하진 않았다. 죄송하다니… 너무 처연하지 않은가.

 

내 유년 시절과 닮은 듯 닮지 않은 그의 이야기에 맥이 좀 빠졌다. 가부장적이고 음주 가무에 뛰어났던 아버지는 맨정신으로 귀가하는 걸 본 적이 없었고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장남이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공부를 안 한다는 벌로 TV며 라디오 선은 잘려 나가기 일쑤였다. 내 유년 시절은 분노가 가득했다. 방문이고 장롱이고 벽이고 주먹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그래도 죽음을 떠올리진 않았던 터라 그의 깊은 상처가 조금은 힘겹다.

 

나는 그런 아버지 덕분으로 두 가지 좋아진 게 있다. 하나는 음주를 하지 않는다. 체대 신입생 OT에서도 선배들이 고무신에 가득 소막(소주와 막걸리) 폭탄을 퍼부어도 마신 후를 장담할 수 없어 버텼다. 물론 또라이로 찍혀 캠퍼스의 낭만 따위는 개나 줘버렸지만. 두 번째는 바벨탑처럼 높은 자존감이다. 아버지가 찍어 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반항기는 치솟았다. 다행스러운 건 삐딱한 비행보다는 운동으로 에너지를 소진했다. 그래서 공부 못한다고 비난하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시는 거에는 나는 걔들보다 운동도, 싸움도 훨씬 잘 하니 괜찮다고 맞섰다. 이때 탑재된 자존감은 목이 부러져 장애인이 된 지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읽다 보니 그와 공통점이 사회복지사라는 거 말고도 또 있다는 걸 알았다. 병원에서 생존 독서를 시작했다는 것, 원래 책은 라면 받침이나 간이 베개 정도로 쓰는 거지 읽는 용도가 아니었다. 교과서는 수면제였고. 목이 부러지고 식물인간처럼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다가 반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뜬금없이 손가락 하나가 눈에 보일까 수줍게 살짝 움직였다. 몇 번의 수술과 재활이 급물살을 탔고 등받이가 있으면 앉을 수 있게 되자 시간이 갑자기 더디게 흘렀다. 독서가 그 시간을 메꿨다. 오른손의 미미한 움직임은 책장 넘기는 재활이 되었다. 그때 이후 나는 수잔 손택이 그랬다는 것처럼 무념무상 TV를 보는 것처럼 그냥 읽는다. 그런 즐거움은 안 해 봤으면 모른다.

 

어쨌거나 그가 받은 학대와 내 고난의 재활은 다른 이유였지만 그도 나도 어쩌면 책은 무력감과 끝없는 우울의 심연으로 빨려 들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174쪽, 22 살기 위해 읽다

 

"아동 학대는 특정 이상한 가족, 이상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다. 아이를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에, 타인에게는 하지 않았을 언어적·비언어적 폭력을 남발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아빠'이고,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소가 바로 '가정'이다." 187, 23 트라우마 승화 시키기

 

숨이 콱 막혔다. 문장 하나가 집채만 한 무게로 가슴에 얹힌다. 내 이야기 같아서, 우리 집 같아서. 그의 양어머니 모습이 내 모습에 겹친다. 나는 손찌검만 안 했을 뿐이지 말로 그보다 더 많이 때리고 할퀴지 않았을까.

 

나는 아들에게 경기하듯 비난을 얹어 소릴 지른다. 가만 생각해 보면 공부를 안 한다는 거나 하루 종일 게임을 한다는 것은 내 입장이고 아들의 입장에서는 공부는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정도로 충분하고 있는 거고, 게임도 해도 해도 여전히 목마를 뿐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저러다 대학도 못 가고 지 밥벌이도 못할까 싶은 염려는 다 저 잘 되, 라고 질러대는 걸까 아니면 남은 내 삶을 염려하는 걸까 궁금해진다. 내 화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아들에게 우리 집은 행복하고 안전한 곳이길 욕망한다.

 

나 역시 사회복지이기도 하고 같은 매체에 칼럼을 쓰기도 해서 얼핏 작가를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30권의 책을 통해 작가가 경험한 서른 개의 인생이 닮긴 듯하다. 태어나 죄송한 그의 삶이 태어나 참, 다행으로 되기까지 한 줄 한 줄 옥죄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의 치유의 글쓰기를 응원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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