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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다봄 청소년 문학 톡! 1

by 두목의진심 202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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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그림은 마치 말하려는 것을 억지로 막는 듯해서 인권에 대한 책이려니 했다. 한데 아니다. 다름이 기괴함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쏟아낸 편견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다.

 

갱년기라서 그런가. 180cm가 넘는 샘이 휠체어를 탄 해리를 한 번도 내려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나, 마음을 책처럼 읽어 주고, 게다가 해리가 대화가 세상 쉬운 것처럼 만들어 주는 닫힌 질문으로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샘의 존재가 울컥하게 한다. 샘 같은 사람은 세상에 흔하지 않다. 우린 당사자의 선택이 세상 중요한 것처럼 질문은 열린 질문이 좋다고 학습하지 않은가.

 

"이 쓸모없는 몸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만도 충분히 불편한데" 67쪽

 

내가 얼마나 많이 했던 생각인가. 벼락같은 사고로 1년여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에크모가 대신 불어 넣어 줘야 숨을 쉴 수 있었던 시간, 나는 하루 아니 초 단위로 '이런 몸땡이로 살면 뭐하나' 싶었다. 그때의 중환자실 공기가 순간 밀려들어 고갤 들고 좀 쉬어야 했다.

 

그렉을 포함한 빌런들과 젠킨스 선생님의 태도를 보면서 소설의 배경이 사회복지가 발달한 영국이라는 데 놀라움과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어디나 똑같다는 데 약간의 안도감마저 든다. 장애인은 다름의 크기만큼 놀림이나 차별의 대상이 된다.

 

174쪽

 

이 책이 놀라운 건 장애를 측은지심의 배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해리를 통해 보이는 세상에서 다름은 해리 자신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로 말하지 않는다. 해리가 학교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지만 보통의 아이들보다 뛰어난 음감을 가졌다는 것은 장애 여부를 떠나 누구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평범함을 보여준다.

 

반면, 엄마의 임신이 가족의 일상을 뒤흔들 만큼의 두려움이 되는 것은 해리의 존재 때문이 아닐뿐더러 그런 두려움을 제공한 해리가 제이크의 방황을 끝낼 수 있도록 매듭지으면서 가족이라서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또 장애 때문에 멀리했던 글로리아의 정서적 교감 역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해리에게 굳이 말하기 연습을 강요하기보다는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의사보조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는 점이나 장애는 재활이나 연습으로 넘어서야 할 극복이나 도전의 대상일 필요가 없고 장애 특성에 맞는 적절한 보조 도구를 활용하는 게 더 좋다는 점까지 담아내며 장애를 한층 가깝게 느끼게 한다.

 

끝으로 작가가 아무리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설이라 할지라도 장애를 바라보는 그의 인간적인 시선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옮긴이도 언급했지만 장애는 누구의 잘못이 아닌 '그저 그렇게 된 것' 뿐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누구도 장애를 원하지 않지만 그렇게 된 것뿐이라는 것, 그러니 그 다름을 조롱이나 차별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길 바란다.

 

"엄마는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우아한 걸음으로 내 침실을 떠났다. 그냥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운이 좋은 건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12쪽

 

283쪽, 옮긴이의 말

 

장애인을 '장애'에 가두지 않고 사람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싶다. 훌륭한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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