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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 시소 첫 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by 두목의진심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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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시와 소설의 콜라보 거기에 인터뷰까지. 12명의 작가와 평론가의 이야기가 담긴 독특한 구성의 책을 받았다. 작가들의 작품을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기다리던 군침 도는 음식을 앞에 둔 심정이 된다. 문학을 가성비로 비유하긴 그렇지만 그렇게 치자면 갑이려나.

 

시와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라지만 육아에 대한 동지애가 사랑에 대한 인터뷰로 넘나드는데 이리 진지할 수 있을까 싶어 읽으면서 두 초보 육아맘들의 하소연에 살짝 미소 짓게 된다. 이런 유쾌한 인터뷰는 마지막 하단 큐얼 코드를 통해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은 하고 싶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보고 배워야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2쪽, 인터뷰 안미옥×김나영

 

시인에게는 미안한 말일지 모르지만 인터뷰를 읽고 다시 시를 읽어야 했다. 사운드북이 왜 사랑이 되는지. 처음과 어떻게 다른지. 왜 새로운 사전 같은지. 인터뷰를 읽기 전 그저 쉽게 가볍게 지나쳤다.

소설, 해변의 피크닉은 난해하다. 열한 살 소녀, '나'가 훌륭한 여성으로 성장해야만 하는 입장이고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외부로부터 부여된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한데 인터뷰를 읽으며 역시 문학을 이해하는 수준이 바닥임을 깨닫는다.

 

어쨌거나 내겐 권력을 쥔 할머니와 경제적 물주인 '나'로 인해 불로소득을 누리는 엄마 사이의 경계, 즉 엄마는 훌륭한 여성이 될 수 없는 존재고 또 반쪽짜리 삼촌의 여자, 늘씬하고 어여쁨에도 그럴 가능성이 없는, 하지만 사춘기 비릿한 욕망이 꿈틀대는 '나'에겐 '예쁨'이라는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여성'이란 정체성에서 보이는 등장인물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복잡다단하다.

 

120쪽, 인터뷰 손보미×노태훈

 

아, 별똥별은 왜 지붕을 뚫고 불시착해서 이리 머리를 어지럽히는지. 시는 옳다고 믿지만 어려운 게 함정이다. 멀리서 보면 빛나는 별이지만 딱 내 품에 들어오면 그저 무거운 돌덩이고 그건 무거운 짐일 수 있다는. 그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라니. 멋지지 않은가.

 

134쪽, 인터뷰 신이인×조대한

 

"엄마의 전화는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석양처럼 슬픈 기운을 몰고 왔다." 162쪽, 미조의 시대

 

면접을 볼 때부터 알았지만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는, 이리 아름다운 표현의 우울이 나를 물들이는 것 같아 멈출 수 없다. 현실이 많이 투영된 소설, 그래서 많이 공감하고 실감 나게 읽었다, 는 평론가의 말에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빠져들어 읽었구나, 했다. 근데 나는 머릴 차여 놀라움을 줄 반지하에 살아본 적도 없고, 그림을 잘 그려본 적도 없는데 그냥 막 공감되긴 했다. 이 시대가 청년이나 중년이나 노년이나 암튼 숨 쉬는 것들은 다 산다는 게 힘겨우니까 말이다. 암튼 재밌기까지 한 게 미안할 정도라는 게 이상한가 싶기도 하지만.

 

211쪽, 인터뷰, 이서수×안서현

 

나에게 가을이라는 계절은 난해하다. 몸의 관절이 봄을 지나 뜨거워지면서 비로소 부드러움을 갖추려는데, 이제 좀 부드러움을 만끽할라치면 이내 뻣뻣한 계절이 곧 다가올 거라 신호하는 계절이라서 달갑지 않다.

 

그래서일까. 시는 그동안 내가 알아온 시의 형태가 아니라서, 웃기 바빠보지 않아서 늙음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어선지 암호를 해독하듯 읽는다. 가을이라서. 나 따위가 시를 알 리가 없어서.

 

237쪽, 인터뷰 김리윤×노태훈

 

장문의 편지, 애초에 답신의 없을 줄 알면서 써야 하는 편지를 수신자인 조카가 되어 읽어야 하는 답답함이 적잖게 숨을 참게 한다. 누군들 어떠랴 싶을 만큼 애정을 갈급해 하는 두 자매의 관계는 서로에게 연민이자 살기 위한 방법으로 참는 것만 할 것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받아 보려 있는 힘을 다했던 유년을 지나 사랑을 주고 싶어 애쓰는 존재지만 현실에서는 부재인 자신을 향한 고백이지 않을까, 한데 작가는 '실패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언니는 동생을 버렸다, 가 아니라 더 이상 형부 같은 인간과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언니의 사랑으로 읽혔는데 작가의 의도 그랬다니 당혹스러웠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언어폭력, 형부의 폭력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원조 교제를 담담히 드러내며 가정 폭력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312쪽, 인터뷰 최은영×김나영

 

드디어 겨울, 그리고 시. 진심이라는 말을 정말 진심을 다해서 내뱉으면 굉장한 이야기가 된다, 는 시인의 말이 굉장하다. 갑자기 진심은 함부로 담아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326쪽, 인터뷰 조혜은×안서현

 

강렬한, 그러면서 아픈, 전봇대에서 떨어져 죽었다, 는 문장과 제비집 안에서 입을 벌려대는 새끼들의 사투 장면이 마음을 일그러트렸다. 나는 우상우가 바라본 제비집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우상우에게 입을 벌린 수경과 아이를 보는 걸까. 갑자기 멀미가 났고, 고개를 들어보니 창문은 닫혀 있다.

 

355쪽, 프리 더 웨일

 

불안한 자리에 대한 갈급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수경의 위태스러움이 전봇대 위에 올라서야 했던 우상우의 결핍으로 이어지는 상실과 절망 그리고 버텨야 하는 일상의 고단함이 진하게 전해진다. 어렵사리 얻은 자리가 위태로워질까 봐 부당한 어린이집 선생님의 태도에도 감사함을 전해야 하는 독박 육아 워킹맘이 하루하루를 전투를 치러내듯 살아야 하는 입장임에 반해 경력단절 여성의 자기계발이나 시간 때우기로 치부하는 자리 뺏기로 연결 짓는 모든 '전'과 'h'의 시선은 마치 고발에 가깝다.

 

402쪽, 인터뷰 염승숙×조대한

 

이 책은 사계를 주제로 출판사 자음과 모음에서 시와 소설을 선정하고 작가와 평론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어찌 보면 작품보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 인터뷰는 독자의 생각을 비교하는 재미를 선사하려는 출판사의 의도 일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성공이지 않을까. 작품에 대한 평론가와 작가의 생각에 더해 독자의 생각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시리즈의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는, 앞으로 숫자를 계속 늘려 가시길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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