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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사회학] 개인주의와 시장의 본질

by 두목의진심 202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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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를 보호해 주고 책임져 준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나의 권리와 자유가 그만큼 이양됨을 의미한다." 8쪽

 

점점 국가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을 시작으로 개인주의에 대한, 그것이 방종이나 폭력이 아닌 것임을 주장하는 이 거침없는 이야기는 프롤로그를 읽는 것만으로도 꽤 거창한 연구 논문의 초록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치과의사, 공중보건의를 거쳐 현재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그의 박사 논문 중 일부는 영국 출판사에 실리기까지 했다는 특별한 이력이 이 책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

 

그나저나 보호의 대가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넘겨 주는 것을 의미한다니 타인의 돌봄을 업으로 하는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논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자유 의지를 담보하고 있는 걸까? 뿐만 아니라 권리도 제한하고 있는 걸까? 물론 돌봄과 보호는 결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마음이 적잖이 무겁다.

 

개인주의를 정치적, 경제적 자유주의 사상의 철학적 관념을 설명하는 부분은 개인 권리의 자유가 어떻게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 작동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아니 쉽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라는 지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하튼 아이스크림 나라에서 초콜릿 소녀의 정치적 의미의 개인주의와 버스 기사와 개인의 경제적 의미로의 약속(신뢰)으로 풀어주는 설명은 분명 꽤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한다.

 

 

습자지처럼 얇은 지적 수준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모든 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게 함정이랄까. 여간해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론과 철학도 산재해 있다. 한계효용가치와 개인 노동의 가치라니.

 

"경제학이 문학과 철학 같은 여타 인문학과 다른 점은, 개인이 어떤 행복을 추구하는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 행복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사호적으로는 어떻게 가장 평화롭고 조화되게, 추구하도록 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한다는 점에 있다." 46쪽

 

저자는 그 어떤 경제 관련 책보다도 경제학에 대해 간단 명료하게 정의 내린다. 이렇게 시장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통해 행복(효용)을 추구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일련의 행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또 개인의 소속, 그러니까 개인과 집단에서의 상호작용 나아가 개인이 가지는 문화적 프리즘은 개인의 어떤 '성향'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개인과 집단의 문화에 속한 태도도 비교한다. 여기에는 개인주의자가 집단주의자보다 타인에 대한 더 높은 신뢰와 더 높은 관용성, 그리고 더 많은 외부 집단과의 관계 형성을 보인다는 설명을 포함한다. 그래서 집단 내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작동되는 군중심리를 개인이 넘지 못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다 가치 있는 의견과 생각이란 일반적으로 무지와 편견에 기초한 주관적인 자기 위주의 생각이 아닌, 객관적인 관계와 현실에 기초한 합리적 의견이다." 88쪽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넘나들며 그들이 풀어낸 철학적 생각들, 특히 로크의 '경험'으로 인식되는 관념이나 칸트의 실천이성처럼 개인적 주체성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이 다루는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단순하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확실한 관념적 선을 찾고 싶었던 나는, 공공 그러니까 타인의 개인적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나'가 중요한 개인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개인주의고, 그런 '나' 이외의 타인의 권리와 자유와 관계없이, 심지어 침해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 '나'만 중요한 것이 이기적이라 생각했는데,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넓은 의미의 개인주의는 역사에서 여러 굴곡을 경험하면서 정당성을 회복해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개인주의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집단주의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의 성향은 개인주의적이고 이성적인 또 다른 인간의 성향과 함께 인간 본성을 이루며, 이러한 이중성은 인간이 이기적인 동시에 협동을 추구하는 존재이게 만든다." 176쪽

 

이 책은 헐렁하게 개인주의에 대한 의미나 사례 정도 소개하지 않는다. 개인주의를 둘러싼 역사, 철학, 관념을 포함한 여러 사상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딱딱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혐오와 증오가 넘쳐나는 21세기 현재에 읽히고 있는 개인주의의 현실과 오해를 보다 친절하게 사유할 수 있게 돕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재미없는 것도 아니어서 흥미로울 수 있다. 오랜만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준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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