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유일한, 평범 - 최현정의 마음 성장 에세이

by 두목의진심 2021. 12. 8.
728x90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로 입사해 10년을 일하고 라디오국 편성 PD로 비자발적 사퇴를 선택한 저자의 히스토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 역시 녹녹치 않은 직장에서 발목을 꽂은 채 버티는 와중이라 마음이 더 쓰인다. 자의 건 타의 건 노동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는 부당함에 그랬던 것뿐인데 그 일은 사랑도 아님에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되레 가슴 팍 깊이 꽂혀 숨통을 조였을 걸 생각하니 더 그렇다.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내모는 현실은, 뭐 너무 흔한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활자로 마주하고 보니 저자의 감정이 내게 빠르게 전이되어 견디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가 망설임 없이 퇴사를 선택한 결심에 그 부장이 눈곱만큼 더했다면 분명 용서를 구해야 하는 행동을 한 것이고, 회사 역시 심히 부당한 거다. 그래서 저자가 그 부장을 피치 못할 이유를 들어 용서한데도, 결국 자포자기 한 인정이라 더 마음이 쓰인다. 그냥 면상 한대 갈기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았을까.

 

 

딱히 어떤 류의 막막함인지 콕 집어 낼 수 없는데도 거대한 벽을 코앞에다 마주하고 선, 딱 그런 막막함이 느껴졌다. 육아에 지쳤다는 절절한 고단함과 그런 하루하루는 커리어로 쳐주질 않는 사회에서 경단녀라는 불안은 절실함을 키워 막막함으로 그 벽을 도배한다. 한데 그런 저자의 감정을 내가 왜 이해되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난 육아에 1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의 힘듦을 저울질하지 말자. 바로 그 저울질 때문에 힘든 거니까. 아끼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가 느끼는 주관적 수치를 그대로 수용하면 좋겠다." 64쪽

 

우린 때때로 힘듦도 경쟁한다. 그것도 가까운 사이라면 더더욱. 예전에 디저트 가게를 열었다가 폭망한 친구를 위로하겠다고 몇몇 친구가 모였다. 퇴근 후 늦은 저녁을 달려 힘들겠다, 친구를 향한 위로는 순식간에 끝나자 슬그머니 서로의 힘듦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이 운동을 안 해서 체육관 운영이 어렵다, 조직에 또라이가 넘쳐나 미치겠다, 월급이 밀린다 등등. 내가 더 힘들다, 아니다 내가 더 힘들다. 그러면서 정작 망한 친구는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었다.

 

지켜보다 "그래도 너희는 몸이나 건강하지 않느냐"라며 불편한 몸으로 허덕거리는 나보다 더하겠냐며 강변했다. 어쩌면 갑자기 장애인이 된 나보다 더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친구들이 야속했는지 모른다. 근데 조용히 듣고만 있던 한 친구가 그랬다. 다 자기가 짊어진 무게가 제일 무거운 법이라고 모두 너보다 덜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땐 그 말이 그렇게 서운했다. 근데 이제는 안다. 저자 말처럼, 친구의 말처럼 다 저만의 힘듦이 있다는걸, 그건 타인이 절대 모를 무게고 그의 잣대는 무용하다는걸. 그래서 이제는 내 힘듦을 조금 내려놓는 게 수월해졌다. 저자도 그랬으면 싶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는 저자의 육아 전쟁을 보며 아내를 생각한다.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집안일은 고사하고 잠투정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안아 준 적도, 놀아 준 적도, 씻겨 준 적도 기억나질 않는 것을 보면 참 무심한 남편이었는데 그런 나를 보며 아내도 '억울해' 했을까? 미안함이 쓰나미처럼 덮친다.

 

읽는 내내 먹먹한 건 둘째치고 내 아이들의 어릴 때와 내 어릴 때를 오가며 기억의 편린들을 소환한다. 어릴 때 신발 끈에 걸린 집 열쇠가 늘 목에 걸려 있었다. 늘 집이 비었던 건 아니지만 성당일로 바쁜 엄마는 자주 집을 비웠다. 혼자 문을 열고 들어 서면 한여름에도 찬기가 훅하고 얼굴을 덮었다. 그래서 열쇠가 있었음에도 더 많이 밖으로 나돌았다. 그러다 많이 늦는 날엔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거짓말로 핑계를 대곤 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애쓴 과정이 우리 부부가 해왔던 과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쌍둥이 육아를 처절하게 감당하면서 상담 공부와 수련까지 해내는 저자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쫙 펼쳐졌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하랴 공부하랴 미쳐 돌아가던 내 일상이 새록새록 하다. 슬기롭지 않은 대학원 생활이라 부르짖지 않았던가.

 

아무튼 육아 지친 일상은 언제고 다 지나갈 것이니 아나운서에서 상담가로 새로운 삶을 살아낼 저자의 내일을 응원해 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