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잊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이 짧은 글귀가 가슴을 때리고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얼마나 '나'를 생각하는지 위로하는지 기억조차 흐릿해서 목이 메었다. 내가 얼마나 잘 웃고 즐거운 사람이었는지 잊고 있었다. 또 그러고 있었다.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는 SNS에서 꽤나 유명한 저자의 이야기다. 과하지 않은 담담함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해, 실패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에 대해 그녀는 "괜찮다.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라고 위로한다.
파스텔 톤의 그림은 적당히 몽환적이어서 참 좋다. 그 안에 서 있는 여인의 뒷모습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다 담고 있어 아련하기도 때로는 외롭기도 슬프기도 하지만 그대로 참 좋다.
"내가 끝내고 싶었던 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사람'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떠나보내니,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모두 사라졌다. 그것이 나의 이별이었다. 나에게 이별은 그 사람뿐이 아니라 소중한 일상 속 작은 습관과의 헤어짐이었다." p114
이별이 '사람'과의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왔다가 떠나가는 것처럼 거대한 일이기도 하면서 소소한 습관과의 헤어짐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어쩌면 내 바닥을 보이게 만들었던 누군가도 있었을 테지만 "겨우 그런 사람 때문에 나를 망치면 안 된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난 나를 망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심지어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그들의 이름은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서 읽기도 어렵다." p238
참 가슴이 저미는 말이다.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서 읽히는 것조차 되지 않을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니 뭔가 툭 내려앉는 느낌이다. 가림막을 눈 옆에 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하루하루 살기만 했더니 너무 빨리 스쳐지나 가서 기억조차 되지 않을 사람으로 남는다니. 이젠 조금 더디 달리더라도 누군가에게 눈길 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사람마다 봄이 오는 시기가 다르대요. 그러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요. 봄이 안 오는 게 아니에요. 조금 늦게 오는 거예요. 겨울이 지나야 봄이 와요. 겨울이 있기에 봄도 있는걸요." p256
왜 내 계절은 언제나 겨울에 머물러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을 기다리게 만든다. 멀리서 아주 천천히 오는 봄을. 그리고 나도 시들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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