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는 도대체 숨 쉴 틈을 안 준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엄청난 양의 소설을 단편 하나쯤 읽는 것처럼 단숨에 읽게 만든다. 덕분에 눈은 흐릿해지고 충혈이 되었지만 말이다. 미스터리 추리물임에도 엄청난 추리를 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뭔가 있을 법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대로 하쿠로와 가에다를 따라가며 '비너스' 존재를 찾으면 된다.
비너스의 존재, 그것도 위험하다고 미리 알려준 비너스의 존재가 무엇인지 꽤나 궁금했다. '미인인데다가 육감적인 몸을 가진 가에다가 비너스일까?'라는 의심을 하다가 '분명해, 가에다야'라는 확신이 들 때쯤 비너스의 존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반전일까? 이것이? 어쩌면 약간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정체를 드러내버린, 아니면 내가 허수룩하게 추리를 이어온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혹은 소름이 돋을 정도의 반전은 아니었지만 작가의 한방은 틀림없이 결정타이긴 하다.
“천재란 이런 것이 아니지. 세계를 바꿔버릴 만한 것을 가진 게 아니라면 천재라고 할 수 없어. 아키토는 기껏해야 수재겠지.” 그리고 그 정도면 돼,라고 말을 이었다. “천재란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p66
책에는 지적장애를 동반한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 서번트 증후군은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사회성이 결여된 자폐성 장애에서 드물게 나타나기는 '천재성'을 의미한다. 서번트 증후군, 리만 가설, 울림 나선이라는 낯선 이론들을 찾아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나 아직 인류가 밝히지 못했다는 소수의 비밀로 뒤덮인 프랙털 도형의 결정체 '관서의 망'이라는 그림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책장을 덮은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았다. 영화화된다면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소수의 비밀이 풀린다면 인류가 어떻게 바뀌게 된다는 것인지 호기심에 흥분될 정도다.
함께 비밀을 좇는 하쿠로의 윤리적 경계를 흔드는 가에다가 비너스인지, 어머니 신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고 말할 정도인 소수의 비밀을 둘러싼 그림이 과연 비너스인지 그도 아니면 또 무엇이 있는 것인지. 속도감 넘치게 이야기에 빨려 들다가 미궁에 빠지고 탄성을 자아내는 한방이 있지는 않지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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