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야말로 절망의 한가운데에 있는 분도 계시겠지요. 절망을 극복하는 길이 전혀 안 보이고, 갇힌 동굴 속 어느 방향에서도 조금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으며,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극복의 길을 빨리 찾는 일이 아닙니다. 그 부분을 부디 서두르지 말아주세요. 중요한 건 이 책에서도 몇 번이나 말했듯, ‘절망의 기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p233
27년 전 찰나의 순간, 내 시간은 멈췄다. 목이 부러지고 전신마비가 되었다. <절망 독서>는 그때로 되돌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공감했다. '절망'을 벗어나려 죽을힘을 다하면 할수록 죽을 만큼 더 깊어지는 절망 때문에 무기력해지는 나를 마주했었다. '이렇게 살면 뭐 해?'라는 삶의 선택지 앞에 섰던 기억. 이런 절망을 벗어나는 방법은 분명 희망이 아니라 절망에 대한 공감이다. 그중에 독서는 분명 많은 도움이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나와 비슷한, 아니 더 힘겨운 절망을 마주하면서 공감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같이 절망스러우면 떨어질 만큼 떨어지게 놔두는 것도 좋다. 떨어지다 보면 언젠가 바닥에 닿으니 그때 일어서면 된다. 옆에서 "뭐 해? 어서 일어서!"라는 말은 필요 없다.
"동행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절망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p76
친구가 그랬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라.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힘듦을 짊어지고 산다."라고.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지 아무리 떠들어도 친구는 내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짊어진 힘겨움의 무게를 알 턱이 없다. 그저 자신이 짊어진 무게가 가장 힘겨운 것이다. 서운했고 가슴이 저렸다. 그걸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절망의 종류는 사백사병 보다 많다." p116
불가에서 전해진 말이라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감정들이 있으니 수많은 절망이 있을 거다. 우린 이렇게 많은 절망을 너무 쉽게 '극복'하라고 다독이고 있지는 않을까? 꼭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겨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27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으로 살면서 때때로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 틈새에 바퀴가 빠져 앞으로 쏟아져 널브러졌던 일. 기분 좋게 영화관람을 한 후 쏟아져 나오는 사람과 부딪혀 넘어져 그대로 밟히던 일. 버스를 타고 가다 내릴 준비하며 일어섰다가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하차장에 거꾸로 처박힌 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살아내다 보면 이런 절망적인 순간들을 마주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설 정도로 절망에 굳을 살이 생긴다. '어쩌면 나를 위한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읽고 나니 세상 모든 절망을 마주하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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