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아마 시간도 함께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지만 어쨌거나 잠시 동안 멍해졌다. 이미 두 아이가 있고 그 녀석들로 인해 행복하다는 감정은 점점 소모되고 피로하고 부담스러운 부분이 점점 더 커져가는 요즘 상황에 이 책을 보았다. 정말 요즘 속된 말로 "어쩔!"이다. 이미 어쩔 수 없는 현실. '아이 없이'라는 시점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내겐 어떤 의미일지 이 책을 통해 알고 싶어졌다. 부모와 비부모 사이의 어떤 내용이 내 현재의 삶과 접점을 만들어 낼지 매우 궁금하다고 할까.
<나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는 열여섯 명의 전문 작가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13명의 여성 작가와 3명의 남성 작가. 단 3명의 남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비부모의 감정들은 나와 어떻게 다를까. 이들은 자발적 비부모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며, 그 이유는 각자 다르다. 아이를 원하지만 생기지 않는 비부모들에 비해 어떤 점이 그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고 비부모로서 어떤 삶의 부모의 삶을 뛰어넘는지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목차를 둘러보다 대니얼 헨더슨이 쓴 "나 자신 구하기"가 눈에 띄었다. 어떤 의미의 "구하기"인지 궁금했다.
머리말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이 책은 머리말을 꼼꼼하게 읽으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제목만으로는 단순하게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만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알고 보면 좀 더 좋을 듯싶다. 특히 대한민국 역시 2018년부터는 인구 절벽이 도래한다고 할 정도로 신생아 출산율이 저조하다는데 과연 출산율 저하가 비부모의 시선으로만 봐야 하는지.
국가가 갖가지 방안들을 만들어 내려고는 하지만 육아와 양육에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방적인 희생이라는 점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유가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과연 어떤 삶이 "올바른" 선택이냐 아니냐의 문제로만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성들이 아이들을 끔찍해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나 자신 구하기>에서 대니얼 헨더슨은 "나는 아이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며, 이들의 이런 모습은 나 역시 끊임없이 세상에 흥미를 느끼고 마음을 열도록 깨우쳐 준다."라고 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단순하게 저출산의 사회 문제를 조장하는 게 비부모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삶의 중요성이나 가치 실현에 더욱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해보면 전체적으로 대부분의 작가가 부정적이고 우울한 느낌이다. 생활 자체가 활력 넘치고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랄까. 솔직히 부모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지배적인 감정의 소유자라고 느껴진다. 오히려 비부모의 길이 현명하다 싶을 정도다.
어쨌거나 나는 비부모가 아닌 부모로서, 그것도 벌써 15년째 부모로서 살아오면서 그중 얼마나 많은 시간이 아이들로 인해 행복 내지는 즐거웠을까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선택의 문제였다면 어땠을까? 결혼하면 당연히 부모의 길을 걸어야 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올곧이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게 숙명처럼, 그렇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처럼 부모의 길을 가는 것인데 점점 지치고 아이들의 미래가 아닌 내 삶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부모와 비부모의 경계가 선택의 문제로 대두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난 부모로서 행복한가 비부모가 부럽지 아니한가에 대한 질문엔 대답하기 어렵다.
삶의 가치에서 무엇이 옳고 그름을, 기혼과 미혼, 부모와 비부모의 선택적 결정은 각자의 판단이며 선택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선택된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게 인생이 아닐까. 난 여전히 기혼자의 삶이 행복하지만 부모의 삶은 물음표다.
"임신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데 유용하다." 23쪽
로라 키프니스의 <모성 본능>에 나오는 위 글귀를 보면 여성이 임신을 통해 삶의 질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모습이 그려진다. 출산이 커다란 호박을 낳는 거와 같다는 적나라한 생각과 자신의 일을 유지하기 위해 기저귀 가방을 포함한 엄청난 양의 짐을 떠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이 과연 행복이냐는 질문을 한다.
임신이 신비하고 성스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남자는 '하지 않는'('할수 없는'이 아니라는 게 놀랍다), 여성만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면 그 이외에 남자는 어때야 하는가를 잠시 고민해 볼 문제이기도 하다. 내 아내 역시 임신 중에 어마어마한 입덧으로 고통받았지만 난 그런 아내를 지켜보고 안타까워만 할 뿐 거들어 줄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임신을 외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내의 고통을 같이 했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남성과 여성의 신체 구조적 차이로 인한 임신에 대한 차별성이나 임신으로 만들어지는 상황적 일들, 예를 들면 자신의 일을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그만두거나 두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여성들의 문제를 간과하지 말 것을 역설하는 듯하다. 부모, 특히 엄마의 모성본능을 강조한 역할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를테면 학부형 모임 등)의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문제들을 어느 정도 비관적으로 평가한다.
"모든 것들이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는 절대 좋지 않다." 36쪽 <천 가지 다른 일들>의 케이트 크리스텐슨은 양육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의무" 그렇다. 출산과 동시에 부여되는 양육에 대한 의무. 이 의무는 가볍지도 않으며 기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녀는 "아이들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조차도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고 한다. 이런 귀중한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게 유지하는 일에 우리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숲 속의 아이들>의 코트니 호델은 다소 비관적이었던 유년기의 기억을 소환하며 임신을 '실수'해야 하는 생기는 일쯤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우리는 매일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와 함께 살아간다."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문제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왠지 혼란스럽고 그가 도대체 뭘 말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가 동성애자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며 그가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회의를 보이는 현실주의자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의 이야기는 두서없는 편지를 읽는 것 같은 이상함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로다>의 폴 리시키의 이야기 등 많은 작가의 비부모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들을 수 있다.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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