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진실"을 들춰내는 것에 모호함이나 티끌의 아쉬움을 남긴다면 진실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닌 그저 소문일 뿐으로 끝날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에서 소위 말하는 "특종"을 의미한다. 읽는 자의 몫으로 돌리며 그저 터트리고 나 몰라라 하는 요즘 언론의 행태에 "저널리즘"의 회귀를 꿈꾸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심이 깊은 종교인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서고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들먹이며 종교인인척한다. 극 중에 마이크(마크 러팔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언젠간 돌아갈 곳"이라는 막연한 종교적 선택이랄까.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랬던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진실"로 무장한 이 영화가 이토록 조용히 상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감내하며 성직자의 길을 가기란 쉽지 않은 길이다. 그렇기에 그 길을 포기하고 성직자의 결혼이 허용된 종파가 생기는 이유라 생각한다. 개신교가 그렇고 가톨릭의 한 종파로 성공회가 그렇다. 불교는 잘 모르지만 불교 역시 결혼이 가능한 종파가 있는 걸로 들었다. 결혼이 허용된 이들 종교의 성직자는 대부분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산다. 그렇기에 부의 축적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주는 쇼크에 가까운 것은 이런 성직자의 부도덕한 일들이 벌어지고 여전히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진실"이라는 점이다.
게오건 사건을 시작으로 보스톤의 성직자의 6%가 연루된 가톨릭 신부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나쁜 사과" 몇 개쯤으로 희석되고 지역에 많은 공헌을 하는 교회의 수혜적 선심에 모두 그저 모른척하는 사실을 보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느리다. 느리지만 무겁고 또한 강렬하다. 숨어있는 피해자들을 만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면서도 발로 뛰며 진실을 외면하는 마을 주민들의 편견에 맞선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명확하지 않다. 소멸해 가는 저널리즘의 회복인지 감춰지고 왜곡된 진실에 대한 고발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좋은 배우들이 영화에 녹아들어 배우에 집중되지 않고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기를 바라며 조용히 덮인 진실을 조용히 그러면서 묵직하게 보여주는 <스포트라이트>는 올 해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성직자가 그랬고 지금도 그럴 수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정도로 마무리되는 점은 아쉽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아이 한명을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면, 아이 한명을 추행하는데도 마을 전체가 필요한거요."
글 : 두목
이미지 : 다음 영화 "스포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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