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연출한 <보이후드>를 보았습니다. 대체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이나 비하인드를 잘 모르는채로 얼마전 본 <버드맨>과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다툰다는 정도의 얘기만 들었죠. 그래서 궁금했는데.. 이 영화, 아니 다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깊이와 철학이 담겨있군요. 한 소년의 12년 인생을 담은 자서전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장편 소설을 탐독한 느낌이랄까. 보고 나서 왠지 모를 먹먹함이랄까. 딱히 누구 하나 절망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유쾌하지 않은. 그냥 우리들 이야기 같은.
한 감독과 배우들이 12년을 함께 이야기하며 성장하는 영화는 처음이기에.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와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의 성장기는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그들의 부모로 등장하는 에단호크나 페트리샤 아케이트 역시 새록새록 늘어가는 주름만큼이나 삶의 무게를 잘 보여주고 있었구요. 한 가족의 헤체와 또다른 결합 가족이 주는 새로움이나 갈등, 질서 등을 보여주면서 그안에서 혼란스러운 어린시절을 보낸 두 남매의 이야기는 그냥 삶에 대한 보고서처럼 느껴졌습니다.
메이슨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끌어가지만 각자의 삶에 대한 방식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와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22살, 17살의 어린나이에 만나 섹스를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흔들리는 남자와 헤어진 채 두 아이를 양육하며 사는 올리비아는 삶에 지친 어느 순간 인생의 변환점을 갖기 위해 대학을 선택하고 엄마의 선택에 아이들은 낯선 곳으로 삶의 터전을 의지와 상관없이 옮겨야 합니다. 대학에서 만난 교수와 재혼을 하고 그의 폭력을 견디기 어렵워 다시 한번 새로운 터전을 위해 이사를 결정하고 아이들은 이번에도 역시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 시작해야 하는 낯섬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다 석사를 졸업하고 대학강단에 선 올리비아는 제자와 다시 재혼을 하고 역시 아이들은 두번째 의붓 아빠를 가져야 하지요. 낯섬을 경험할 때마다 익숙했던 것들과 단절되어야 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저 스스로 자랍니다. 어쩌면 누구나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이렇게 핵심적인 이야기는 인생은 때론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엄마의 이혼과 재혼이 가져다주는 엄마 인생에서 아이들은 혼란스러워야 하고 스스로 삶을 지탱하고 있어야 합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살지만 메이슨은 엄마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엄마를 봐 학위도 땄고 좋은 직업도 있고, 돈도 벌지만... 우리 엄마도 나만큼 헤매면서 산다는 거지."
"주변 사람들이 내 인생에 간섭하는 게 너무 화가 나는데 정작 그들은 그걸 알지도 못해."
메이슨의 인생에서 엄마의 삶은 자신들과 유지하는 어떤 것에 대한 의미를 영화 내내 '의미가 없다'라고 중얼거립니가. 또한편 엄마는 대학으로 떠나려는 메이슨에게 울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죠. 인생을 다바쳐 일궈낸 성과일지 모르는 자식들의 독립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과 쓸쓸함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했네요.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야.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결혼하고 애 낳고 이혼하면서!
네가 난독증일까 애 태웠던 일, 처음 자전거를 가르쳤던 추억... 그 뒤로 또 이혼하고 석사학위 따고 원하던 교수가 되고 사만다를 대학에 보내고 너도 대학 보내고...
이젠 뭐가 남았는지 알아? 내 장례식만 남았어!"
부모의 인생으로 아이들의 인생을 간섭하고 있다는 생각은 솔직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뜨끔하긴 합니다만 낮게 읇조리는 메이슨이 이해는 되지만 어쩔 수 없지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처럼 <보이후드>는 아이가 유년시절을 거쳐 성장하면서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생각하게 합니다.
"뭔가 두렵지 않니? 대학생이 된다는 거... 내 말은, 집 떠나 혼자 살고, 사진에 대해선 좀 더 배우겠지만... 대학생 된다고 뭔가 확 변할 거 같진 않아. 나도 변화는 기대 안 해. 그냥 삶의 단계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일 뿐. 이게 미래의 열쇠는 아냐."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이제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 이제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 온전한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야한다는 부담감이 메이슨에게는 인생 전체에 대한 회의론적 염세의적 시선까지 던지고 있지요.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이 이야기가 참 맘에 들었습니다. 결국 현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난 그 말을 거꾸로 해야 될 거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시간은 영원한 거지..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글 : 두목
이미지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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