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
유서 깊은 `카루주`가의 부인 `마르그리트`는 남편 `장`이 집을 비운 사이,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감내해야 할 불명예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크`의 죄를 고발한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크`는 강력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장`은 승리하는 사람이 곧 정의로 판정받게 되는 결투 재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장`이 결투에서 패할 경우, `마르그리트`는 즉시 사형에 처해지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데… 출처: 다음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게 한편으론 잔혹 동화처럼 느껴진다. 우정과 질투, 사랑과 복수가 빚어낸 하나의 사건을 라쇼몽 형식으로 감독은 세 사람의 기억과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철저하게 신탁에 의해 인간의 권리를 남자에게만 부여하던, 그것도 칼을 든 남자에게는 더욱 강력한 권력을 선사하는 중세 시대에서의 여성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감독은 땅따먹기가 당연한 시대,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변명처럼 담아낸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의 왜곡, 혈맹으로 다져진 자크와는 신분의 차이를 두지 않는 친구이지만 영주의 총애를 시기하고, 지참금으로 받아야 할 땅을 장인이 영주에게 빼앗겼지만 아내를 사랑하니 감내할 수 있고, 아내의 말을 신뢰하고, 사랑이 식지 않아서 죽음을 각오하고 결투에 나선다는 장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뒤를 이어, 용맹하지만 즉흥적인 장을 못마땅해 하는 영주에게서 자신이 막아내는 것이고, 장이 지참금으로 받을 땅을 영주가 막무가내로 준 것이라 어쩔 수 없었으며, 마르그리트를 강제로 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그런 것이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결투에 나선다는 자크의 이야기가 위치한다.
마지막, 장의 강압적인 요구로 땅을 지참금으로 뺏긴 것이고, 자신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후사를 위한 욕정 대상일 뿐이었고, 완고하고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기울어져 가는 가계를 위해 애썼고, 치욕스럽게 강간을 당했다고 고백했지만 신뢰받지 못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결투의 결과를 받아들이려 한 마르그리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감독은 드러내놓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장과 자크를 묶어 남성 모두를 가해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두 남자의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마르그리트 이야기는 '진실'이라며 시작한다.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에 자신이 겪은 참혹하고 부당한 일을 드러냈을 때,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다거나 혹은 정숙하지 못한 행실을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게 하면서 동시에 진실이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진실이 된다, 라는 믿는 사람에게는 진실이 다르다는 관점을 명확히 한다.
그러면서 가짜 정보가 판치는 현시대를 돌아 보게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결투 장면에 나선 장과 자크의 투구에 주목하게 한다. 반쯤 열린 장의 투구는 아내의 결백이든, 자신의 명예든 진실을 드러내는 용기를, 반면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사실을 숨기려던 자크는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 게 아닐까.
암튼 감독은 진실에 대한 증명을 '신'이 아닌 관객에게 돌린다. 과연 이 무모한 결투에서 얻어지는 결과로 진실은 충분한가, 하는. 자신이 결백이 남편의 생존으로 얻어걸리는 이 상황에서 마르그리트는 웃을 수 있었을까. 우린 가해자의 기억과 피해자의 기억을 동일한 선상에서 같이 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700년 전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결투에서 현재로 끌고 온 이 영화에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처럼 미묘한 차이로 다른 이야기처럼 선사한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하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 아주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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