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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진 세상 순간 기록자라는 작가, 살아내는 삶에서 자취를 감추는 '당신'들을 기억하는 기록이라는 그의 말에 손끝이 찌릿했다. 내게는 애닯게 기록할 만한 당신이 있던가. 읽는 내내 쓸쓸한 이별이 손끝에 잔뜩 묻어나는 그의 이야기들이 이상하게 목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되레 또렷해진다. 그래서 산문이라기엔 그의 깊은 나락은 너무 짙다. 그의 언어는 감탄하게 되는 시다. 언제쯤 슬픔을 걱정하지 않고서 사랑할 수 있을지 묻는 를 음미하다가 그의 사랑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지고, 밀어내려 애쓰는 그의 언어와는 달리 '당신'이 밀려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그렇게 매달려야 살 수 있었을지도. "우리는 사랑하는 타이밍은 맞았는데, 이별하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아는 아직, 우리에 대한 사랑을 끝맺질.. 2023. 11. 29.
[시만화] 두고두고, 오래 보고 싶었다 풀꽃 시인 나태주와 웹툰 작가 다홍의 콜라보로 엮어낸 감성 폭발 만화 시집이다. 시인은 '시와 만화가 어울린 첫 책'이라 했는데, 어쩌나 싶었다. 내 기억에 이미 만화 시집 이 있다. 풀꽃 시인은 아쉬움이 들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 작렬하는 책은 누가 뭐래도 이 책이 아닐까. https://m.blog.naver.com/djanmode/221009400363 시 한 편을 두고두고 오래 바라보며 시상을 상상해 보는 게 지친 일상에서 소소하게 위로가 되었다,는 다홍의 말이 그동안 시를 부러 찾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던 시간에서 알게 된 것은 아무리 많은 독서를 했어도 지친 일상이 그만큼의 위로를 받지 못했던 이유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시가 소중한 이유를 깨닫는다. 어쩌면 이렇게 상.. 2023. 11. 20.
[문학] 시소 첫 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시와 소설의 콜라보 거기에 인터뷰까지. 12명의 작가와 평론가의 이야기가 담긴 독특한 구성의 책을 받았다. 작가들의 작품을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기다리던 군침 도는 음식을 앞에 둔 심정이 된다. 문학을 가성비로 비유하긴 그렇지만 그렇게 치자면 갑이려나. 시와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라지만 육아에 대한 동지애가 사랑에 대한 인터뷰로 넘나드는데 이리 진지할 수 있을까 싶어 읽으면서 두 초보 육아맘들의 하소연에 살짝 미소 짓게 된다. 이런 유쾌한 인터뷰는 마지막 하단 큐얼 코드를 통해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은 하고 싶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보고 배워야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2쪽, 인터뷰 안미옥×김나영 시인에게는 미안한 말일지 모르지만 인터뷰를 읽고 다시.. 2022. 3. 1.
[에세이/낭독리뷰] 흐르는 눈물은 닦지 마라 답답한 이야기 아니, 가슴을 옥죄는 이야기라는 게 맞겠다. 군부 시절 그 혹독한 시절에 군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가슴이 떨렸다. 나와 비슷한, 몇 해 정도 더해진 시절이어서 웃음기 걷힌 추억들이 부서졌다. 새마을 운동, 반공 포스터, 야간통행금지, 불심검문, 민방위 훈련, 국민교육헌장, 등화관제 등 오직 군부의 안위를 위해 국민을 빨갱이로 위협하면서 살을 찌운 군부는 조금씩 똑똑해지는 국민들을 다시 위협하려 삼청교육대를 창설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올림픽을 끌어들여 어떻게든 군부 연장의 꿈을 꾸던 그 시대였고, 부모가 찔러준 돈 봉투에 성적이 보살핌을 받는 교육과정을 받던 시절이었다. 난데없이 툭 솟아오르는 무시무시한 졸시의 어둠과 달리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감의 원은희의 그림은.. 2021. 9. 25.
[에세이/낭독리뷰] 당신이라는 자랑 "사람은 힘든 일이 몰려오면 이유를 찾고 싶어 합니다." 7쪽 ​ 무기력하고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향한 위로, 어쩌면 사랑. 누군가의 삶을 위로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도 작가는 거침없이 그러고 싶다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담담하면서도 아주 따뜻한 자신의 이야기에 생각들을 얹어 마음을 전한다. 산문과 에세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와중에 틈틈이 박혀있는 그의 시는 빼곡히 채워진 그 어떤 페이지보다 오래 머물게 만들고 오래 되새기게 한다. ​ 출근 길이 밀리기 시작하면 대책 없이 운전만 해야 하는 터라 오늘도 새벽 출근을 해서 조용한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다. 한 명씩 한 명씩 직원들이 밀려드는 시간인데 하필 작가가 월급을 탔다. 왈칵 눈물이 터져 활자가 흐릿해지고 훌쩍댔더니 감기 걸린 거.. 2021. 4. 3.
[문학/시] 해인으로 가는 길 '해인(海印)'이 뭘까. 시인은 아픈 육신을 끌고 이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 구도자처럼 살고자 한 걸까. 번민이나 해탈이나 하는 것들이 이미 탐욕의 육신이 되고 나서야 깨닫는 게 아닌가 싶은데 시인의 삶이 그러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고교시절 한마디 한마디 구구절절하지 않은 글귀가 없을 정도로 애틋한 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무조건 감수성 충만한 사람이 되고자 친구들 연애편지를 대필하면서까지 애쓴 기억이 있다. 어느덧 세월이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나온 지금, 작은 것 하나에도 현실적이 된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이런 내게 딸아이가 을 선물해 주었다. 그동안 시인을 잊고 있었나. 시인의 시구가 연인을 그리는 애틋함보다도 현실을 벗어나고픈 구도자의 삶이 보여 낯설다. 시가 무조건 애틋할 필요는 없지만 남.. 2016.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