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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 - ‘척’에 숨긴 내 마음을 드러내는 시간

by 두목의진심 2021.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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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귀촌을 진지하게 탐색 중이라 TV에서 귀촌했다며 구가옥을 매입해 손수 리모델링 하는 TV를 아내와 보다가 가열차게 깎고 다듬는 비슷한 연배의 남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나이를 들먹이며 이죽거렸는지 "아니, 해가 바뀐 지 한 달이 넘어가네요. 아저씨. 당신 쉰 둘이야."라며 놓쳐버린 세월을 콕 집어다 기어이 제자리에 갔다 놓으며 아내가 웃는다. 하… 어쩌다가 그렇게 빨리 먹어 버렸을까.

 

크크크. '기어이'라니! 열망하며 도달한 정상 마냥 감격적 단어 선택에 시작부터 빵 터지고 시크하면서도 감정 풍부한 표현이 담긴 문체가 므흣하게 만들어 마음을 가볍고 기분 좋게 해주는 책이다. 그나저나 오십이 된지 두 해가 지나버린 나에게 오십은 '기어이'였는지 '어쩌다'였는지 아니면 '벌써'인지 어떤 의미인지 더듬게 되는 걸 보면 아직은 노련한 인생은 되질 못한 게 분명하다.

 

"자꾸 나를 불러 세우는 것들에 대해서" 새로이 작전을 짜봐야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다짐 앞에 멍하게 서있는 내가 있다. 나는 무엇이 어떻게 불러 세우는 것에 귀를 열고 있을까. 산다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은 것이 되려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는 구차한 핑계 뒤로 숨으며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하늘과 바람의 색과 냄새를 모른 채 한 건 아닌지. '불러 세운다는 말'이 그냥 서러워진다.

 

그의 가슴에 '꼰대'를 꽃은 게 그의 아들이었다면 내 가슴에 내리 꽃은 건 그였다. "그 누구도 존중할 의사가 없는데 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우기는 인간"이 꼰대라니. "너, 아빠 말이 우스워?!"라거나 "아빠 말이 말 같지 않냐?!"라고 목에 핏대 세우는 일이 허다한 인간이다 보니 말문이 막혔다.

 

p53

 

"그런데, 살다 보니 그놈의 정이라는 것도 참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 편향이 생긴다.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을 골라 신념으로 만들어 박제해 놓고는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잘못된 정의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성에, 자의적으로 해석한 정의를 들고 세상을 대하니 꼰대 소리를 듣는다 해도 억울한 일이 아닐 게다." p27

 

제목을 보고 단순히 세월의 풍파를 나이에 쌈 싸서 정통으로 맞은 억울함을 풀어 놓는 신세 한탄 물이라 생각했다. 읽다 보니 나이 듦은 거저 날로 먹는 게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통에 그에게 참으로 미안해진다. 한데 본인은 뿌듯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럴만한 깜냥이 되질 않으니 자괴감마저 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그의 삶의 통찰은 감탄사가 절로 나게 멋지니 용서한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 같은 웃지 못할 표현은 회피나 나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더 이상 노력에 배신 당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라는 걸 기성세대들만 모르는 것 같다." p41

 

이게 무슨 오십에 대한 이야기랴 싶다. 인생을 쭉 직선으로 펼쳐 놓아도 쉽게 관통할 수 없다는 것쯤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맛보다 냄새가 먼저 후려치는 게 인생일 터. 작가의 현타 작렬하는 통찰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p105

 

"두 번째 일은 거북이처럼 가보기로 했다. 현실적인 제약을 먼저 꺼내놓지도 말고 높은 목표를 세우지도 말고 지속 가능한 일이냐는 무거운 질문도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부지런히 걸어가 보기로 말이다. 너무 뜨겁지 않게. 다시 그늘이 그리워지지 않게." p94

 

동시대를 살며, 특히 은퇴가 뻔히 보이는 연령대라면 두 번째 일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는 작가와 다르게 꿈도 자신도 샘솟지 않는다. "이게 안 돼요?"는 언감생심이다.

 

서른 즈음에는 영어로도 불어로도 내 이름 석 자를 소개할 수 없는 주제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 비즈니스 마켓을 쫓아 가 미제 프로그램 설명을 귀가 아닌 눈으로 듣고 돌아와 직원들에게 설명을 해줄 정도로 신문물 습득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데 얼마 전 회사에 그룹웨어를 구축하고 전자결재 시스템을 도입했다. 매뉴얼 교육을 들었음에도 모니터 위에서 커서는 자꾸 길을 잃는다. 허망하게 달아난 기억을 탓하면서도 직원을 불러 세우고 "왜 나만 안 되는 거냐?"라는 말도 안 되는 푸념을 쏟아내는 내가 측은했다. "그래요. 안 됩디다!"

 

p181

 

훗! 아들과 시험을 찍는 문제로 실랑이하는 대목에서 오지랖이 발동한다. 내 경험상 "네네, 있어요. 찍기만 하는 거!"라고 손 번쩍 들고 아들 편을 들어 주고 싶다. 공부는 남의 일로 여기며 학교를 다닌지라 오월의 대학 축제를 누려보고 싶은 마음에 원서를 내놓고 심하게 쫄렸는데 덜컥 합격장을 받았다.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운발이 빗겨 맞은 것뿐이라서 그가 운을 알아채지 못한 노력의 결과라 추켜 세우니 머쓱하다.

 

"누군가 그랬다. 잘 산다는 건 많은 걸 누리는 게 아니라 내가 살던 세상보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떠나는 거라고. 그런 세상은 거창한 구호나 의정서 따위가 아니라 개개인의 결심과 실천으로 완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바쁜 젊은이들 대신 조금 더 여유로운 내가, 바쁘게 사느라 환경을 온통 어지럽게 만든 우리 세대가 비로소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일 것이다." p208

 

그가 말하는 '오십이 가벼워지는 인생 공부' 중 탁월한 가르침은 19번째, "'원칙'에는 꾸준함이 필요하다."라는 말이다. 솔직히 50년 동안 가져보지 못한 끈기를 50을 훌쩍 넘어 선 마당에 머리나 가슴 어디에서 자라지도 않을 테고 그렇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도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더 오지게 뼈를 때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인생을 희극으로 바라보는 그의 통찰이 묵직하면서도 부러움을 동반한다. 게다가 등장하는 지인들도 그 못지않다. 가벼운 문체 속에 인생이 묵직하게 담겨 있어 '기어이' 오십을 철학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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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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