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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교양/에세이] 여자의 숨 쉴 틈 - 인생의 길을 잃은 여자, 인생의 끝에 선 노인을 만나다

by 두목의진심 2018.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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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시인은 <여자의 숨 쉴 틈> 추천사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스탠드의 스위치를 누르듯 펼치는 순간 이 책은 깜빡, 하고 켜지며 마음에 빛을 준다."라고 말이다. 어쩜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을까.

"마구잡이로 섞인 비빔밥이 마치 제 인생 같습니다."

'제길' 울컥해져 버려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게 된다. '들어가며'를 읽었을 뿐인데 그렇게 살아오시고 살고 있고 살아갈지도 모르는 엄마와 아내 그리고 딸의 모습이 저자가 비벼놓은 비빔밥 안에 담겨있다. 아, 이 기분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먹먹함이 전해진다.

"난 아이를 내게 온 손님이라고 생각했었다. 저 아이는 하나의 나와 다른 인격체, 이미 본인 자신의 길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난 그냥 옆에서 잘 이끌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걸까? 점점 예의 없어지는 아이들의 태도에 지친다." p20

아이들은 아이들의 인생이 있다고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 수 있게 적당한 시기가 오면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아이들의 인생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아이들에 치여 점점 나와 아내의 인생이 그려지질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화가 가능해지는 예닐곱 살 즈음부터 "너희는 대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면 부모를 떠나야 한다"라고 주지 시켜왔다. 아이들도 지금은 두렵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각오하는 눈치다. 딸아이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앞으로 4년쯤 후엔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갑자기 사는 게 무서워졌다." p21

갑자기? 난 늘 사는 게 무서웠었다. 불편한 몸으로 벌어먹는다는 일이 어찌나 힘들던지. '가장'이라는 짐에 마음은 언제나 종종거렸지만 내색할 수 없어 넉넉한 웃음으로 포장했다. <죽지 않으려고 먹지는 말자>를 읽는다. 저자의 글에서 아내의 얼굴이 겹쳐지며 가슴에서 뻐근한 통증이 밀려 올라온다. 맛난 것을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 항상 식구 수보다 적은 음식을 시키고 그 음식에서 조금씩 덜어내며 "이렇게 먹으면 여러 가지를 배불리 먹을 수 있잖아."라며 웃는 아내를 보며 짜증을 내곤 했다. 몰랐다. 그저 궁색한 살림을 초래하는 게 내 탓인 것 같아 짜증이 났는데 그 자리에는 엄마이자 아내만 있었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한 여자로 인 자신은 없었다는걸. 많이 미안해지니 또 짜증이 난다. 둔한 남편밖에 되지 못해서.


<창이 하나인 이유는 같은 곳을 바라보라는 것>을 읽다가 슬그머니 불편한 심기가 올려진다. 역시 나도 남자고 남편이라 그런가. 문득 박원의 노래 중 "서로가 다른 건 특별하다고, 같은 건 운명이라 했던 것들이 지겨워져"라며 더 이상 사랑을 노력하는 일이 힘겹다는 노래 가사가 예리하게 귓에 박힌다. 아직은 아내와 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특별하고 운명이라는 생각일까. 갑자기 사는 게 무서워진다. 

하루 종일 '나'가 아닌 식구를 위해 악전고투하고 들어왔더니 정리 안된 집에 초저녁부터 졸고 있는 아내를 마주한다면 마뜩잖을 수밖에. 자신을 찾겠다는 아내를 격려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남편도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으니 문제다. 나도 그렇다. 돈 쓸 일이 생기면 "이 돈 이면 애들 치킨이 몇 마린데"하며 씀씀이를 점검하는 내가 아닌 아빠만 있다. 어느샌가 남자도 아들은 없다. 남편 약간에 대부분 아빠만 존재한다. 슬퍼야 하는데 그러자니 쪼잔한 아빠가 돼버리니 그럴 수도 없다. 그게 더 아프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닌데 참아야 한다. 아빠는 그렇다.

"내가 아는 나랑 남이 아는 내가 비슷하면 그냥 평범한 철수 아빠가 되고 그 둘의 갭이 크면 클수록 인생은 드라마틱해져" p110

이 책은 우울증을 견뎌내는 저자의 어지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나이쯤 되면 적당히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소망이 보랏빛 환상이었고 현재의 궁핍함으로 타인과 비교되는 삶엔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부모님에 대한 회한, 점점 나이가 차가 줄어들어가는 큰언니의 부재와 따뜻하고 의지가 되는 남편과 닮은 듯 닮지 않은 아이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세상 끝 나락이라 여겨질 때 앉고, 안길 곳이 되어준 양수리 할아버지의 존재까지.

너무 담백하고 투명해서 손을 대면 바스러질 것 같은 아슬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매일매일 우울해지기 위해 사는 것처럼 쳇바퀴를 돌리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도드라져 가슴이 뻐근하고 아프다. 감정이 폭풍처럼 몰아쳐 자주 멈추고 숨을 골라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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