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생활 속에서도 재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해요. 이걸 못하면 가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
이 책의 마지막 <마치며> 등장하는 글귀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재밌게 일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자신의 가게가 아닌 회사에 얽매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이 책 <시골, 한적한 곳에 가게를 차렸습니다>는 딱히 창업에 대한 방법이나 기술에 대한 노하우 같은 건 없다. 다시 말해 창업에 관련된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창업을 동경하게 된다. 그것도 공기가 좋든 안 좋은 한적한 시골이나 도심의 뒷골목 같은 사람이 뜸한 곳을 찾아서 말이다. 게다가 주저주저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9개의 가게와 9개의 질문들이 읽는 동안 설렘을 준다.
소개되는 가게들의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이며 창업비용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다. 또 번잡스럽게 사람들을 찾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든다. 온 사람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사람과의 관계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공통점. 소개되는 가게들을 보다 보니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번거롭고 멀어 도시에서 찾아오기 힘든 곳이지만 다녀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질 것 같은 그런 곳. 내가 꿈꾸는 곳. 하지만 그런 생각의 끝 한편에는 이런 생각도 떠나지 않는다. "근데 먹고 살 만은 할까?"
나 역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여유를 만끽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딱히 가게를 열 만큼의 손재주나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서 늘 고민과 상상만 무한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도심을 벗어나고픈 열망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요즘 하고 있는 일에 열정 따위가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암튼 그런 내가 이 책 <시골, 한적한 곳에 가게를 차렸습니다>을 만났다. 제목을 보자마자 다시 용틀임하는 무언가가 있다. '한적한'이 주는 막연한 여유로움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궁금하다.
첫 번째 가게 <산채정식+갤러리, 유산 YUSAN>을 읽으며 아쉬움이 절정을 치달았다. 내 아내는 음식 솜씨가 제법 있기는 하지만 나는 거의 젬병에 가까운 손재주를 타고났으므로 가게의 인테리어를 '거의' 혼자 해낸 우미히라 씨를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초기 자본이 훨씬 더 많이 들 터이므로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처지다. 그런데도 이 부부의 삶이 부럽고 이 부부의 여유로움이 탐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메뉴보다는 일부러 찾아와서라도 먹고 싶은 요리가 좋고, 거기에 플러스알파의 발견도 있다면 더욱 즐겁겠죠. 아키야는 찾아오기에는 번거롭고 먼 장소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곳입니다. 자연 속에서 마음도 몸도 충만하게 채워갈 수 있는 그런 가게가 되고 싶습니다." 18쪽
두 번째 가게는 우왓!! 다름 아닌 헌 책방 <하나메가네 상회>다. 내가 만약 일을 벌인다면 제일 가까운 아이템이다. 손님을 끌어들어야 운영이 되는 그런 곳이 아니라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을 반갑게 맞아 주기만 하면 되는 곳. 얼마 전에 읽었던 <모든 일이 드래건 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에서도 나를 설레게 만든 공간 역시 헌책방이었다. 케케묵은 냄새와 오랜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곳. 그런 헌책방이 주는 신비스러운 공간은 언제나 상상해도 설렌다.
세 번째 가게는 <밭에서 만든 효모 빵, 다로야>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빵집이다. 헌책방이 있고 그 옆에 은은한 향이 퍼지는 커피와 고소한 빵이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풍경일까. 호시노 씨는 효모 발견에 흥미로움을 느끼다 빵까지 만들었다는데 "나도 효모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네 번째 가게는 <찻집, 소스이>라는 찻집이다. 넓게 펼쳐진 파란 바다 같은 호수를 보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가 한적한 곳이라 생각하는 풍경이다. 너른 바다가 주는 느림의 여유. 그런데 여기는 호수지만 바다 같았다. 그리고 '소스이'에서는 차를 판다. 나중에라도 헌책, 빵 그리고 차. 이 삼박자가 딱 들어맞는 그런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아내가 허락해줄까?
"다시 작심하고 요리 공부를 하거나, 유명 카페에 가보는 식의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무엇이든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라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하기로 했지요." 50쪽
"모든 것은 반드시 의미가 있으며,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결론이 있다."
여섯 번째 가게 <제과점, 고나토다와무레루>는 '가루와 노닐다'라는 뜻이다.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나도 나중에 나만의 가게가 생긴다면 뒷구절은 '노닐다'로 해야겠다. '헌책과 노닐다' 같은. 어쨌거나 이 여섯 번째 가게를 읽으며 오븐에 과자를 구워주던 아내에게 전문적으로 배워서 만화 캐릭터 과자를 만들어 커피와 함께 팔아보자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집 주인 역시 그런 과자를 만들고 있어 한발 늦은 거 같아 아쉽다. ㅋ
일곱 번째 가게 <그림책과 커피의 파빌리온>은 이국적인 그림책과 수제 드립 커피의 조화. 궁금하다. 그곳의 모든 것이.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요. 행동을 시작하면 상상도 못 한 일이 터지거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거나,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예요. 91쪽
여덟 번째 가게 <하코다 가방>은 아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방은 아니지만 100년을 가는 가방을 만들고 싶다니 언젠가 프라다처럼 세계적인 가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 가게 중 처음으로 내 관심 밖의 가게다. 크크.
마지막 아홉 번째 가게 <구보타 상점>은 '술만주'를 만들어 판다. 술안주가 아니다. 정확한 설명이 없지만 '술(酒)'이니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발효 효모로 빚은 팥빵이 아닐까 싶다. 보기에는 찐빵과 비슷한데 맛이 어떨까 궁금하다. 어쨌거나 100년 가까이 이어 온 가업이라니 그 또한 소개된 다른 가게들과는 좀 색다르다.
그리고 마지막은 각 가게들에 대한 아홉 개의 궁금증을 모아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이나마 길잡이를 해주고 있다. 이 책은 뭐랄까? 뭘 바라지 않고 읽으면 기분 좋아지는 책이라고 할까? 일본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곳들을 두루 다녀보고 싶어 지도와 메모를 사진으로 남겼다. 완전 강추한다.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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