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가지 소원>은 영국 작가 브랜던 로브쇼가 펴낸 동화다. 동화답게 기발한 상상력이 동원됐다. 그것도 "소원"을 들어 주는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 극한 상황에서 예를 들면 꽉 막힌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응가가 마려워 하느님을 찾는 거 말이다. 그런 거 말고도 "하느님 제발 ~하게 해주세요." 나는 종종 저런 주문 같은 소원을 자주 비는 편이지만 그럴 때마다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 샘은 이제 우리나라 학력으로 치자면 초등학교를 막 벗어난 중학생이다. 새 학년 새 학교 새 교실 새 담임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일들을 겪어야 하는 등교 첫날. 우연히 떨어지는 별똥 별에 소원을 빈다. 한두개도 아닌 100만 개씩이나 말이다. 근데 그걸 또 다 들어 준다. 결국 샘은 200개도 못썼다. 나라면 과연 뭘 빌었을까?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는 거? 로또 한방 맞는 거?
처음에 시작되는 이야기는 누구나 예상되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등교 첫날부터 질 나쁜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복수를 해야 하는 당연한 복수혈전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주인공 샘이 겪는 "허무함과 무기력함"에 공감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좋겠다"를 연발하며 샘을 부러워하지만 샘의 말도 안 되는 소원들을 들으며 하나씩 없어지는 소원들이 아깝다가도 결국 샘이 느끼는 "의미 없음"을 함께 느끼기 시작한다.
이 책은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는데 다름 아닌 "노력이 없는 결과는 재미가 없다"는 것과 의미없는 것들 속에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의미가 생겼다는 점이다. 나름 어리지만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진리를 통달한 것처럼 인생에 대한 묘한 철학같은 걸 가지고 있는 엉뚱발랄한 샘과 에번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은 흥미롭지도 재미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는 성장 동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읽기에는 글 밥이 좀 많아서 펄쩍 뛰겠지만 그래도 읽어보라고 꼬셔보고 싶은 좋은 책이다. 어른이 읽어도 좋은 그런 동화다. 완전 추천한다.
"내가 정말로 뭘 원하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뭘 원한다는 게 이제 더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뭐든 빌기만 하면 그 즉시 가질 수 있는데 어떻게 간절한 마음이 들 수 있겠는가? 원하는 건 뭐든 곧바로 가질 수 있다면 뭘 갖는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 긴장감도, 안도감도, 놀라움도, 느닷없는 기쁨도 없다." 151쪽
"삶 전체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삶은 고생을, 배움을, 향상을, 연습을, 그 끝에 마침내 얻는 성취를 의미한다. 하지만 뭐든 빌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면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프랑스 어와 축구와 체스와 물리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때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노력 없이 그저 소원을 빌어 이루어진 결과였기 때문이다." 179쪽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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