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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여행] 라오스가 좋아 -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by 두목의진심 201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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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시간이 없어 떠나지 못하는 여행은 아닐 테지만 늘 같은 핑계로 늘 같은 자리를 머무르는 나는 책으로 여행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십여 년 전만 해도 꽤나 모험가적 기질이 있었는데 이젠 마흔 중반을 넘어서 오십 줄에 다다르니 이것저것 재는 게 많아지면서 준비된 여행이 아니면 생각조차 않는다. 2002년 호기롭게 사업을 벌였다 망하고 비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재취업은 몸도 성치 못한 내게는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간간이 생명 연장 정도의 외주 작업만 하다가 우연히 푸르디푸른 밤이 있는 섬 제주도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도 내가 모험가적 기질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여행이라는 건 신혼여행 정도로 갈음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덜컥 내려가겠다고 하자 아내를 비롯 부모님과 형제를 포함해서 친구, 지인들까지 생면부지의 땅에서 몸도 성치 않은 네가 어떻게 살겠냐는 만류하고 나섰다. 한데 나는 이를 뒤로한 채 "한달만 살아보고 결정하겠다."라는 말로 아내를 설득하고 무작정 혼자 제주도로 내려가 생활을 시작했다. 첫 출근 전날 동전이 굴러도 아주 느리게 구를 정도의 얕은 경사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얼굴 절반을 아스팔트 도로에 갈아 버리고 진물 뚝뚝 흐르는 얼굴에 메디폼으로 도배를 하고 강의실에 얼굴을 내밀었다. 다들 뜨악한 표정이었지만 허연 이를 드러내면서 첫 강의를 시작했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그렇게 설레기만 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얼굴이 그 모양이 됐다는 연락을 받은 아내가 소스라쳐 달려 내려오고 우리의 제주 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었다. 그렇게 3년을 넘겨 지내는 동안 정말 행복하고 꿈같던 일상이 있었다. 그땐 아마도 그 속에 살면서도 여행자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느리게 오는 주말을 기다리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혹은 하지 않은 것들을 찾아가며 이런저런 글과 사진과 흔적들을 남기고 다녔었는데. 이젠 나는 여행을 글로만 한다.
 
요즘 여행 관련 책자 제목에 많이 등장하는 곳이 "라오스"다. 얼마 전에 읽은 <댄싱위드 파파>는 모녀간의 여행 이야기에도 흠뻑 취했었는데 이번 <라오스가 좋아>는 부부의 이야기다. 물론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둘이 손을 꼭 잡고 동네 골목길을 누비고 또 허리춤을 꼭 안고 마을 경계를, 국경을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넘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년 새 세 번이나 같은 곳을 "다른 방법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저자의 말에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프롤로그에 인상 깊은 말이 있다. "라오스는 없어서, 비어서 좋다"는 것이다. 사실 아직은 비워진다는 게, 덜어낸다는 게 삶에 어떤 의미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꿀지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그다지 공감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나 역시 "라오스가 좋아질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이 책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의 감수성 짙은 필력이다. 건조하게 자신의 행적을 독자에게 전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지금 순간의 자신의 감정과 느낌과 황톳빛 강의 어스름을, 새벽빛의 강렬한 탁밧 행렬의 장엄함 그리고 그 끝에 줄을 지어 앉아 있는 구걸하는 아이들의 고단함을 그리고 내 몸까지 끈적해지는 라오스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는 거다. 부럽기까지 하다. 이런 필력이.
 
"오히려 청각에 갇혀 있던 언어가 다양한 감각으로 살아남을 느낀다." 35쪽
"두 아이의 움직임이 비와 함께 참 맑았다. 그날 나는 라오스의 비는 느닷없고, 그래서 그 안에 맑은 이야기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79쪽
"마치 정지한 장면들을 앞에 두고 누군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190쪽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바람을 풍경을 냄새를 열기를 정말이지 가보지 못해도 다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어느새 나는 '팍세'를 지나 '시판돈'에 그들과 함께 있다. '잭'과 '폴리'가 추는 춤을 눈으로 좇고 있으며 흥겨운 리듬에 함께 그 공간에 머문다. 그리고 '미스터 리'의 몸에 새겨진 근사한 문신을 보고 있으며 가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책으로 하는 여행은 이국적 공간의 바람과 냄새와 사람들의 표정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나름 상상 속으로 그들과 함께 있으려는 노력이 재미를 준다. 나는 지금 '라오스'에 있다. "사바이디~~~!"
 
"잘 몰라도, 낯설어도 또는 기차를 놓치거나 오토바이가 고장 나고 복잡한 도시에서 길을 잃어도 두려워 말기. 세상은 다행히 시인과 나그네에게 관대하고, 길 위에서의 어려움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대신 여행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계산하지 않고 단순해지기, 오직 그것이었다." 42쪽
 
"애초의 도착 예정 시간 따위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이 순간이 여행자에겐 신비롭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여행길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일상에서의 상식과 속도로부터 비로소 벗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60쪽
 
"이런 이야기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벼를 심는다면, 캄보디아 사람들은 벼가 자라는 것을 보고, 라오스 사람들은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234쪽
 
"여행자의 시간에 대해 다시 말해야겠다. 거리의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이 한 곳에 고인 과거를 현재로서 만날 때, 나는 시간여행자가 되곤 한다." 290쪽
 
#21. "아이들은 놀기 위해서 세상에 온다"를 읽는 동안에는 깨달음도 얻었다. 잠시도 그렇게 단 1초도 쉬지 않는 내 아들 녀석에서 "가만히 좀 있어!"는 말은 늘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내게 이 말은 굉장히 큰 깨달음을 던진다. 아주 먼 라오스의 여행자에게 전달된 이 깨달음을 어찌할 것인가.
 
#25. "여행이란 삶의 속도가 주는 다름"을 읽으면서 베트남에 대해 하노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각자마다의 여행에 대한 "다름"이 존재하지만 저자의 경험에 동화돼 나도 모르게 베트남 그것도 하노이의 고단함 각박함 치열함보다는 라오스의 여러 도시의 한적함과 느림과 풍요로움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죽기 전에 라오스를 그곳의 느림을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우울하다. 근데 너무 좋다. 이 책도 라오스도.
 
오타다. 155쪽 13째 줄. '안화'한 사진이 아닌 '인화'한 사진.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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