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원으로 결혼하기>의 제목을 보는 순간 20세기 말에 올렸던 내 결혼이 생각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값지다. 근데 솔직히 "도대체 이 금액에 결혼식이 가능해?"라는 의심이 들면서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책의 내용은 셀프 웨딩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는데 신부가 직접 준비하며 겪은 체험담을 레진코믹스에 연재한 내용을 엮었다 한다. 거기다 활자가 아닌 만화책이니 읽기 쉽고 재밌다.
나는 결혼한 지 벌써 17년이 지나고 있다. 아내와 만나 2년 조금 안되는 날을 연애 하다가 21세기를 넘기지 않고 싶어 1999년 서른 살이 끝날 때쯤 했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나온 2016년 기준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더 썼다. 난 부자도 아닌데 말이다. 만화가 불친절 양은, 이제 아이까지 출산했다니 아줌마인가? 어쨌거나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500만 원에 백만 원 정도 더 얹은 예산으로 결혼을 했을까 궁금했다. 책 말미에 나온 그들의 명세표를 보고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알았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닌 신혼살림이었다. 우리에겐 있었고 그들에겐 없는. 우린 용산 전자상가와 강변 테크노마트를 돌아다니며 나름 발품을 팔면서 TV에 오디오,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 등을 마련했지만 그래도 꽤나 목돈이 들었다. 그 차이가 결혼 비용에 고스란히 차이로 남았다. 그들은 이런 가전 제품은 어떻게 했을까?
나 역시 성당에서 결혼을 했고 하객이 많지 않을 거라 예상에 대성당이 아닌 소성당에서 했다. 성당에서 해도 사용료를 내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당에서 치르는 예식에 드는 비용은 비슷할 거다. 그 외에 예물이나 혼수, 웨딩 사진, 피로연이 달랐다. 그리고 또 다르 점은 우리는 떠났다 3박 4일 만에 돌아와야 하는 신혼 여행이었고 그들은 1년 가까이 신혼 여행을 포함한 유학 패키지로 떠난 것이 달랐다. 어쨌거나 여행 비용도 절약된 셈일까나? 그런 그들의 결혼은 매년 기념 공연을 할 정도로 두고두고 추억을 곱씹게 된 즐거운 축제였다는 점이 부럽다.
"스스로를 지지고 볶고 누군가를 탓하는 일은 이제 그만둘 것이다.
내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은 결혼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나름 감정이 소모되고 때로는 다툼도 생기기도 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한 친척들에게 돌려진 예단들이 쓰일 곳에 요긴하게 쓰이기나 했는지 그저 장농 한쪽에 여전히 새 거인 채로 있지는 않는지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으며, 결혼을 하는 날도 사돈에 팔촌까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척들에게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나면서도 웃는 얼굴로 영혼 없는 인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결혼 한다니 한달음에 달려와 준 지인들 역시 왔는지 안 왔는지 기억도 조차 나지 않고, 왔지만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제일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가 시월의 찬 바람을 맞으며 나비넥타이에 홑겹의 옷을 입은 나와 어깨를 훤히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아내가 이를 덜덜 떨며 찍었던 결혼 웨딩사진이다. 근데 이걸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딱 한번 들춰본 게 다다. 그땐 남들 다하니 그냥 해야 하는 이벤트였던 거 같다. 그렇다고 행복이 배가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돌이켜 보면 소박하고 작은 결혼식을 했더라면 더 많은 하객들을 기억하고 더 많은 추억을 남기지 않을까 싶다. 불친절 아줌마와 노키드 아저씨처럼 말이다.
"우리는 감정을 가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청첩장을 만들었다.
정작 어르신들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500만 원으로 결혼하기>를 읽다 보면 단순한 그냥 돈을 아끼기 위한 젊은 청춘 남녀의 호기로운 결혼 이벤트는 아니다. 말 그대로 개념 결혼식이랄까. 불친절양과 노키드군 시절의 시댁과 처가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온 역사가 다른 남녀가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재치 있는 대사와 그림과 개념 정리로 풀어내고 있다. 거기에 결혼 준비를 하며 겪는 딸과 엄마의 갈등을 풀어 내기도 하고 준비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저렴하게 더 좋은 것들을 준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알짜 정보를 있는 대로 다 담았다. 이런 정보들은 다리품을 팔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 이 책의 묘미다.
이 책은 결혼 혹은 재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 신부에게는 정말 요긴한 정보가 가득하다. 또 군데군데 불친절 아줌마는 결혼 준비부터 결혼식까지의 이야기에 외전을 덧붙였는데 특히나 인상 깊은 것은 엄마의 어릴 적 친구를 찾는다는 이산 친구 전단이다. 엄마 곁을 떠나는 딸이 엄마의 외로움을 염려하는 마음이 예쁘다.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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