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최고의 가족 전문 상담가로 불린다는 예스퍼 율 (Jesper Juul)이 2007년에 집필한 <Die kompetente Familie: Neue Wege in der Erziehung>이 오랜 시간을 둘러 번역 본으로 나왔다. 원제를 구글 번역기로 돌려 보니 <유능한 가족: 교육의 새로운 방향>이라고 번역한다. 이 책이 <부모와 아이 사이,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번역기로 돌린 제목보다는 내용과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은 목차부터 부부의 가치관에서부터 육아를 비롯 가족의 구성부터 거의 다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이들과 연관 지어 따뜻한 화법으로 쉽게 이해시켜 주고 있다. 이 책은 육아를 시작한 부모나 말이 많아지고 자기주장이 짙어지는 아동 혹은 퉁명스러워지고 점점 멀어지려고만 하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의 아이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제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육아 혹은 양육에 있어 "사랑"이 전부는 아니라고 콕 집어 말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이라는 가치로 무장하고 혹은 집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부모로서 "진짜?"라는 의문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 부모가 아이들 대하는 부분에서 "연기"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마음에 와 닿는 건 왜일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퉁명스럽고 데면 데면한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한다면 얼마나 힘겨울까. 그런 생강이 들면 아이들과의 관계는 이미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의무감이나 책임감 따위로 부모 역할에 대한 연극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점점 규율에 집착하고 있는 나와 점점 데면 데면 해지는 아이들의 관계에서 피로도가 쌓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수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가 그저 정해진 대본에 따라 부모 역할을 연기하고 있거나 어떤 규율을 정할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아이가 대신 규율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대게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어려워집니다." 50쪽
규율에 관한 내용을 보다 "나의 규율"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중 2인 딸과 초 2인 아들. 녀석들에게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집안 규율을 만들고 있는지 또 그에 따른 제제와 폭언은 얼마나 퍼붓는 부모인지 가늠이 안된다. 부모가 "'규율'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가"를 자문하는 게 중요하다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나 역시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다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첫 번째 가정에서 답습한 가부장적 규율을 아무 생각 없이 혹은 그와는 정반대로 내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답습" 하거나 막무가내로 "적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에 따라오는 부작용은 아이의 주눅 든 표정과 아빠를 어려워하는 것임을. 반면 나는 아빠에게 서먹해하거나 멀어지는 아이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한다. "뼈빠지게 고생해서 키워놨더니"라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책을 읽으며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규율은 확신이 들 때만 시도하라고 하고 있지만 시도도 안 해보고 잘잘 못을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이들과의 규율 논쟁인 거 같다. 특히 요즘처럼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아이들과의 신경전은 나에게는 나름 소모적인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규율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서로 각자 5가지의 바라는 규율을 적어 보고 꼭 지켜야 하는 집안 규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혼자 흐뭇하다. 근데 가족들이 동참해줄지 모르겠다.
53쪽에서 언급한 "내가 수십 번도 더 말했지! 너는 도대체 귓구멍이 막힌 거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부모의 모습은 현재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들을 향해 쏟아내는 말이다. 이 말에 비난의 뜻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든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규율을 정하기 전에는 상황에 따라 그 규율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54쪽
"부모가 먼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이도 당연히 다른 사람의 규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아이를 힘으로만 누르려고 한다면 아이도 나중에 상대방을 힘으로만 누르려고 할 것입니다." 58쪽
며칠 전 육영재단의 미래세대 포럼에 참여했다. 강연 주제가 "나만의 스토리텔링법" 이었는데 다수의 청소년 틈에 그들의 엄마가 동행한 게 보였다. 그중에 한 엄마는 아이와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강연은 좀처럼 집중하지 않고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아이의 태도나 집중도를 시종일관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종내는 아이를 자신의 옆자리로 불러다 앉혔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질문을 해보라고 채근한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포럼까지 왔겠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질문까지 채근하는 엄마를 보면서 과연 아이의 미래가 온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챕터를 읽다 보니 과연 그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전문 지식이 아이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부모들이 늘 그 정보를 한 아이의 부모가 아닌 전문가의 입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이마저도 전문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한 거지요. 따라서 이런 부모들의 '교육적' 지식이란 아이를 다루는 '전략적' 지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아이에게 가슴으로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190쪽
10장에서의 "권력"에 대한 내용은 특히 가슴이 뜨끔한 내용이 가득하다. 가족의 관계에서 '권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억압적인 힘은 생각보다 크다. 가정에서 나의 '권위'를 만들기 위해 '권력'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는지. 혹시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한다. 159쪽의 "가족의 분위기의 중요한 점은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라는 저자의 충고는 마음에 남는다.
"오랫동안 부모는 아이가 집에서는 전자의 순종적인 태도를, 밖에서는 후자의 독립적인 태도를 보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는 서로 상치되는 요구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아무리 간절히 바란다고 할지라도 동시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아이는 없습니다." 37쪽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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