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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청춘 성장 분투, 청춘유감

by 두목의진심 202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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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쓰고 찍는데 발표되고 상영된 적 없다니. 그것들에 대한 집념이고 무한 애착 아닐까. 멍하니 노려보는 눈매도 그렇다. 누가 그랬다. 아프니 청춘이라고. 뭘 몰라 휘청댄다는 듯하게.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실은 중년도 노년도 다 아프다. 살아 있으면 다 그렇다. 그래서 작가는 유(有)감이라 했을까. 궁금하다.

 

책을 읽으며 목차를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작가 소개에 홀려 느릿하게 읽는다. 울고 넘어졌단 그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끼워 맞춰 보려 애쓰는 내가 웃겨 서둘러 넘긴다. 이 책, 왠지 단숨에 읽을 듯한 예감이 든다.

 

프롤로그에서 스스로 정말 기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자괴하면서 걷는 그의 모습에서 복지 현장에서 나 역시 그러고 있는 걸 확인 한다. 중요한 대목과 그렇지 않은 대목을 취사 선택하며 그가 느낀 부채감을 덩달아 느끼면서 말이다.

 

작가가 장학금처럼 소중히 읽은 씨네 21을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버렸던 기억이 났다. 책장을 뒤져 보면 다만 몇 권이라도 튀어나오지 않을까. 학창 시절엔 독서라면 교과서를 비롯해 활자가 그림보다 조금만 많이 박혀도 진저리 쳤다. 그래도 만화책은 좀 많이 읽는다 하여 취미 난에 독서를 쓰고 난 후 으쓱이기도 했고. 오십 중반이 됐어도 가진 재능도 배운 재능도 없으니 독서도 재능이라 믿는다.

 

인생에서 자신을 조건 없이 믿어 줄 딱 한 사람이 부모가 아니라 선배였다는 저자의 말에 기분 묘했다. 내게 부모가 그런 존재였던 건 아니었지만 왠지 작가는 그랬을 것 같았다. 비슷해서 안도였을까. 아무튼 그런 선배는 내겐 없던 사람이라서 약간 의기소침했다. 그가 부러웠고, 혹시 필요하다면 내 아이들에겐 내가 그 사람이 되었으면 싶기도 했다.

 

90쪽, 딱 한 사람만 믿어줘도

 

내가 문학을 사랑했던가. 왜 성석제라는 이름이 입에서 구르듯 자연스럽고, 작가가 필사했다던 짧은 문장이 반가운지 모르겠다. 서두르듯 책장 어디쯤 있길 바라며 그 책, 제2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찾아 봤다. 작가 김연수의 문장을 책상 앞에 빼곡히 붙여 놓았다던 학창 시절의 그의 모습이 어슴푸레 지금 그의 문장을 옮기는 나와 같을까 싶다.

 

"좋아하는 마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될 수 없었다.(142쪽, '성덕'이 되었습니다)"라거나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벌어지지 않는 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156쪽, 신춘문예의 기쁨과 슬픔)" 같이.

 

그래서 학창 시절 뭐 하나에 꽂혀본 것도, 사색은 커녕 천둥벌거숭이처럼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시간을 허투루 보낸 처지여서 작가의 분투가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 성실한 독자로서 알리려던 작가 '박지리'라는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기억해 내지 못했다. 여러 감정이 휘몰아치던(서평에 그렇게 쓰여있었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해서>를 읽었다. 덕분에 내 '읽고 싶어요' 리스트에 박지리의 책들을 다 담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기자로서의 그의 일은 상관없었다. 광화문 분신이 있기 전에는. 광화문에서 분신이 있었는데, 소개팅을 하다 말고 한 시간 가량 걸려 그가 기사를 써낸 곳은 분신이 있던 자리가 아니라 오피스디포 근처 카페였다는 게, 기자가 취재 없이 한 시간 가량 기사를 뚝딱 지어내는 일이 너무도 신기해서, 취재는 누군가 해줬겠지라는 간절한 심정이 들었다. 짧은 시간 그가 참 마음에 들던 차라서.

 

204쪽, 나를 키운 밑줄

 

꽁꽁 동여매진 김치통도 없고 밑줄 친 신문도 없는데 그런 작가 등 뒤에서 같이 그렁해졌다. 엄마라는 존재가 그렇다. 요새 가뜩이나 몸이 좋지 못해 억지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받지 않은 몇 번의 전화에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막 퇴근하고 나서는 길, 엄마는 전화기 넘어 반가움을 담아 가는 길에 들려 옥수수 좀 가져가 쪄 먹으라 했다. 그리고 집 앞에서 마주한 엄마 얼굴은 아빠 병수발에 푸석해져 있었다. 속상한 내 얼굴을 본 엄마는 되레 얼굴이 왜 이리 상했냐며 걱정했다. 서둘러 엄마를 남겨 놓고 핸들을 있는 힘껏 잡고 눈물을 쏟았다. 맞다, 완성되지 않은 나는 8할이 엄마였다.

 

감히 이렇게 써도 될지 모르겠다. 참 맛깔 난다고. 병원 천장만 보다 이십 대를 보냈던 나로선 그의 청춘이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는 꿈틀대는 무엇이 있어 괴로울 지경이었는데 그건 아마 부러움이었으리라.

 

가열차다 못해 치열했던 그의 청춘이 손에 잡히기는커녕 부유물처럼 허공을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그럼에도 글을 읽는 내내 재능 없음으로 막을 내렸다는 그의 소설이 내심 기대 됐다. 어쩌면 언젠가 읽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무낙이 발행되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내 글을 읽게 된다면(부디 그러길 희망하며), 나도 기꺼이 독자가 되고 싶으니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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