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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의 해법, 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by 두목의진심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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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자극적인 제목에 빨려 들었다. 어쩌면 발칙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 정로 지나치기 어려운 제목이었다. 우리 엄마처럼 남편 때문에 화병이 생긴 걸까? 아니면 내 아내처럼 남편 돌봄에 지친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제발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순탄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기까지 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꺼내 보이며, 독자 역시 자신의 내면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문득 떠오른, 그땐 다 그랬어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세상을 관통한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서든 폭력적인 말과 주먹이 당연했다. 전날 숙취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선생은 발이 빠른 제자에게 교문 밖 약국에서 숙취해소제를 받아 오라고 시켰다. 약사는 선생의 이름만 듣고 또야? 라는 대답과 함께 약을 내주었다. 자신이 고통이 지체되면 늦었다는 이유로 여지 없이 뺨을 갈겼다. 제자는 고작 6학년이었다. 40년이 넘은 일이지만 선생의 이름은 잊지 못한다.

 

"어렸을 때 부모가 우리를 돌보던 방식은 우리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이 된다." 35쪽, 붕대만 감는다고 낫는 게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무능력한 아버지 뒤치락에 사력을 다했던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희생이 부질없어 보일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을 감내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선을 넘지 못했던 방황의 날들이 속속들이 떠올라 힘들었다.

 

아버지의 삶과 꼭 닮았다. 아무리 부정해도 아버지의 모습이 종종 거울처럼 겹쳐진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아니 그도 엄마를 통해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그런 아버지의 삶이 내가 만든 필름 속에 펼쳐진다. 그 장면들을 주워들고 부르르 떨고 있다. 팔십이 넘은 태양 같은 아버지 여전히 숨죽이며 돌고 있는 엄마. 그런 엄마의 안부 확인 차 돌아가며 본가를 방문하는 삼 형제. 아니 나는 3년 째 가지 않았으니 두 동생들만 행성이려나. 그 짧은 문장에 가슴이 메어왔다.

 

75쪽, 고통이 크면 곁에 있는 사람은 투명 인간이 된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남편과 아이에게 갚고 있는 저자의 삶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태도가 변한 아버지를 대하는 건 작가와 다르게 나는 많이 억울했다. 그토록 가부장적이고 무심하고 폭력적이던 아버지가 살이 마르고 등이 굽고 암에 치매까지 오고서야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거부감이 일었고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전화도 피했다. 병세가 심해진 탓에 이젠 그러지 않지만 감정은 여전하다.

 

단 한 장도, 아니 한 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단어 하나 하나에 내 유년을 곱씹어야 했고 그런 유년을 그대로 내 아들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 괴로웠다. 아들도 내면 아이가 고통을 먹고 자라고 있을까 두렵다. 그러지 않아야지라는 반복되는 후회에 만성이 된 건 아닐까.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오직 나만이 내 행복을 책임질 수 있다는 진리를 깨 달해야 한다." 103쪽,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나

 

저자가 자주 언급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계속 걸렸다. 그랬을까.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 동생들 앞에서, 동네 사람들 앞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엎드려뻗쳐를 하고 엉덩이를 맞던 일, 아버지 키만큼 자라고 나서도 뺨따귀를 맞던 일의 기억을 무의식으로 밀어놓은 채 아들의 조그만 잘못에도 불같은 화를 뿜어 내고 느끼는 후회와 미안함이 실은 수치심이었던 걸까. 내면의 아이가 여전히 벗어나 못하고 있었나.

 

138쪽, 사랑받기? 사랑주기!

 

사실 내게 일상은 지옥이 아닌 그저 평안함이다. 한데 유독 유년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는 책들을 보면 마음이 순식간에 어지러워진다. 그리고 대를 이어 고통처럼 느껴지는 아버지와 아들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가 서있다. 한편으로는 무의식으로 밀어 넣으려 애쓰는 감정이 아니라 부러 끄집어내 확대하려는 감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 깊숙이 욱여넣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펴진 느낌도 들었다. 목이 부러져 사경을 헤맬 때, 엄마도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엄청난 병원비를 쏟아 부어야 하는 아내와 아들, 아버지는 어쩌면 아내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두 명의 아들이 더 있었으니. 어떻게 그리 쉽게 나를 포기하자는 말을 했을까 싶어 분노했었는데 아버지는 쉽게 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볼 때마다 분노가 치솟고 어떻게든 고치고 싶은 가족이 있다면, 사실 그게 나의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176쪽, 빛과 그림자 함께 보기

 

아들을 바라보는 딱 내 심정이라서 뒤통수를 힘껏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아들이 아닌 내 모습이라니. 나는 저만할 때 안 그랬다고 아내에게 씩씩 거리며 항변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내게 분노하고 있던 걸까.

 

179쪽, 빛과 그림자 함께 보기

 

3만큼의 감정이라면 3만큼 흔들려야 하지, 억누르려 애쓰다 보면 3이었던 감정이 10만큼 커져 모든 걸 흔들어 버린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제 감정에 끌려 다니 않도록, 딱 그 크기만큼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리라 다짐한다. 참 오래 애정 하게 될 것 같은 책이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준, 그로 나를 발견하게 해 준 저자가 고맙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겨워 한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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