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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 맑스주의 이해하기

by 두목의진심 202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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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맑은 주스"로 읽어 버린 아내의 재치에 웃음이 빵 터진 책. 학창 시절, 반공 사상의 세뇌화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도 못하게 만들고 그저 나쁜 놈들의 사상 정도로 끝났다. 이미 불평등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굳이 사람들에게 불평등의 이유를 깨닫게 만들지 않으려는 꼼수, 근면하고 성실하고 죽도록 노력하면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다는 사탕발림은 낙수효과를 내세우는 경제 논리는 사람들을 길들이고 무디게 만들지 않았을까.

 

자유를 볼모로 한 민주주의 체제 하에 자본주의의 수명이 한계에 다다랐다거나 끝났다는 슬라보예 지젝의 주장이 담긴 말처럼 중산층이 사라진 시대에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갈라 놓는 부의 불평등은 진심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젝이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나 그밖에 다양한 사상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깊기는커녕 무지하기까지 해서 이 책이 아주 흥미로웠다. 심지어 참 얇아서 부담도 없었는데 되려 오래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그 순간에 그들이 한 실수를 알아챈다." 10쪽, 서문

 

현 시대를 살아본 것처럼 콕 찍어 정리한 그의 문장에 소름 돋을 정도다. 불평등의 자본주의가 심각하게 팽배한 한국 사회 역시 그런 사람이 필요한데도 '알아챈'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허나 드러나지 않더라도 있길 진심 기원하고, 조금씩 변화를 위해 나설 것이라 희망한다.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선 것도 모자라 자본주의 비판에 대명사가 된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옹호는 '자본주의가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실상은 실패로 끝나자' 원인이 자본주의 자체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참된 진보를 이끌어 내고자 노력했다는 것에 있다.

 

저자는 맑스의 이런 노력의 실마리는 자본주의 비판을 다룬 그의 저서들 속에서 찾는데, 다름 아닌 노예제와 봉건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노예제에서 주인과 노예가 그 대대로 세습되는 형태는 노예제가 붕괴하고 그 자리를 봉건제가 대신 하고 주인 대신 지주가, 노예 대신 농노로 선수만 교체 된 것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꼬집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명쾌해서 놀랍다.

 

그러던 것이 자본주의에 이르러서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되었고 이들 모든 시스템에서 동일하게 '착취 당하는 부류'가 존재 한다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매일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맑스주의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

 

잉여에서 착취 그리고 계급에 이르는 내용에서 현대는 노동에서 잉여를 만들 수 없는 구조, 즉 노동자가 죽도록 일해서 받는 임금은 잉여는 커녕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동, 노인, 소외계층 등 잉여를 분배 받을 수밖에 없는 부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 잉여를 착취하는 계급이 선심을 베풀 듯 하는 사회 공헌에 의존해야만 하는 현실이 꽤나 짜증 났다.

 

하나마나한 생각이긴 하지만, 애초에 노동자가 잉여를 만들어내지 않는 구조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분배는 어차피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어서 맑스가 던진 자본주의 비판적 논의는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41쪽, 3장

 

"맑스의 기본적인 주장은 자본주의가 불평등과 불안정을 생산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도전해야 한다." 74쪽, 6장

 

자본주의는 99%가 아닌 1%에게 더 많은 재화를 분배한다는 그의 경제철학은 15세기 이후 6세기가 지난 지금, 21세기를 살아내는 모든 생산적 노동계층의 고단함은 이유 있는 고단함이었다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 시간이었다. 자유에 휩쓸린 민주주의 시대에 자본주의를 생각해야 할 시간은 분명하다. 얇지만 생각의 깊이를 엄청 두텁게 만드는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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