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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 애널로그 생존과 쾌락을 관장하는 놀라운 구멍, 항문 탐사기

by 두목의진심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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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이란 단어에 탐사기라는 단어가 혹심을 자극하는데다 풍선으로 표현한 재치 넘치는 표지에 살짝 흥분했다. 벌써부터 재미있다. 게다가 딱히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의 시선으로 탐사된 항문이라 더 흥미롭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쉬쉬하는 항문, 이 인체의 중심이고 수정된 후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기관이라니 왠지 항문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궁금해서 원제를 찾아봤더니 '똥구멍 조약'이다. 근데 왜 출간 제목이 애널로그지?

 

항문의 기원부터 항문의 존재 이유 등을 재치있고 때론 놀랍고 때론 흥분하게 만드는 갖가지 이야기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아마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다 여기에서 똥구멍을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양한 종들의 보고다. 읽다 보니 박장대소하면 괄약근을 탄력적으로 만들어 성감을 좋게 만든다는 데 요즘 배꼽을 잡고 웃을 만한 일이 없으니 이게 진짜 큰일이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전문적이어서 대장항문과에서나 들을 법한 항문과적 병변과 치료법을 설명하는 데 도대체 이 사람 정체가 궁금해진다.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단지 호기심으로 이 해박한 의과적 지식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다. 그건 그렇고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자극이 있는 항문 일광욕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67쪽, 항문 관련 질병들

 

"세 살 무렵의 아이가 최초로 내뱉는 '싫어!'라는 항문 괄약근을 조절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생겨난 주체성과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결합되는 시점을 나타낸다." 93쪽, 싫어!

 

똥을 싼다는 게 이리 중요한 의미가 있는 줄 알았다면 그때 좀 더 우아한 자세로 노력을 기울였을 테다. 그렇다고 당시의 기억이 남아 있진 않지만 엄마에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휴지에 대한 장황한 역사를 읽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 역시 불과 40여 년 전에는 신문지로 똥을 닦았다는 것을! 근데 이게 왜 이렇게 신기하지?

 

근대 종교가 개인의 성생활까지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19세기의 이야기를 비롯 대부분 항문을 둘러싼 이야기가 딱히 성적 취향에 대한 편견이 없다 생각했음에도 쉽지 않은 내용이 적지 않다. 점심시간 사무실에서 읽다가 주변을 의식해 슬그머니 책장을 덮기도 했다.

 

인체의 신비나 생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까지 관한 깊고도 은밀한 이야기, 여기에 항문 그리고 성의 다양성에 얽힌 적나라하고도 거북살스러운 다양한 이야기가 역사와 심리, 예술 등을 통해 펼쳐진다.

 

​175쪽, 구멍을 위한 노래

 

개인적으로는 아주 유쾌한 이야기를 상상했는데 솔직히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잖이, 아니 훨씬 많아서 당황했다. 항문은 똥만 싸는 데가 아니면서도 신체 기관으로 아주 중요하다는 점은 확실히 알게 됐다. 그 이외는 노코멘트다. 끝으로 항문을 이렇게나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저자가 놀랍다.

 

312쪽, 항문 예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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