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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 -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_ 공평한 위로

by 두목의진심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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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다, 니. 작가 소개를 읽으며 이르긴 커녕 이미 태풍 한가운데서 주야장천 버티는 중인데? 싶었다. 그러다 문득 고단한 그의 삶이 무심한 세상에서 소비돼버리는 일들을 이르는 건(왜 있잖은가, 가벼운 고자질 같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후… 당연한 것들에 의심을, 품어야 하지 않냐며 써 내려간 그의 프롤로그를 읽는데 왜 이리 마음이 뻐근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니, 헛헛한 건가? 무표정하게 그리고 엄청스레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글에는 감정의 부스러기가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암이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 오는 게 아니, 라는 그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보탠다. 질병도 장애도 각자에겐 다 다르다.

 

와,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금세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길 반복해서 읽어내기가 힘들다. 심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코를 훌쩍 대니 옆 동료가 힐끗 거리다 눈이 커다래진다. 왜요? 뭔데 그래요? 라는 표정으로 빤히 보길래, 늙어서 그래… 나 갱년기 잖아, 라고 말했다. 책 읽다 이렇게 훌쩍거리는 게 참 오랜만이어서 객쩍은 소리와 멋쩍은 표정으로 응수할 밖에.

 

엄마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죽이는 쳐 죽일 놈의 아들이지만 그럼에도 그 아들과 비극을 놀이로 승화하며 웃을 수 있는 그는 그 짧은 순간에 삶과 죽음을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수 시간으로 탈바꿈 시킨다. 그의 범접할 수 없는 능력에 덩달아 생각이란 걸 해 본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먹먹하게 읽을 수밖에 없던 후회가 잔뜩 묻은 글, 아프다 힘들다 외롭다 무섭다 같은 하루에도 수만 번씩 휩쓸고 지났을 고단한 감정들을 숨기고 숨겼던 일들을 뒤늦은 고백처럼 털어 놓는 활자에 또 시야가 뿌예졌다. 근데 이번엔 숨도 가빠져 결국 잠시 책을 덮었다.

 

115쪽, 너의 목소리가 안 들려

 

"어떤 질병이 모두에게 축복일 수는 없어도 최소한 형벌이 되지 않는 것에 큰 힘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159쪽. 암이 준 선물?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살아보고 싶다며, 노동은 권리라고 이야기 하는 그의 외침이 가득 담긴 이야길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그 권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를 초 단위로 궁리하는 주제라서 부끄러움이 확 끼쳤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든 적든 서로 다른 것들을 품고 그렇게 함께 살아 가는 세상이라고 암만 목소리를 높여도 씨알도 안 먹히는 세상에 갑갑했는데, 그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그래야 너나 할 거 없이 팔을 쭉 펼치면 공간이 만들어져 서로 다치지 않고 팔을 휘저을 수 있다는 말에 대쉬 보드 위에서 힘차게 고갯짓을 하는 강아지 인형처럼 고개가 절로 주억댔다.

 

187쪽, 기준

 

어쩌면 원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암 투병과 경력단절과 그리고 엄마 사이에서 무던히도 자존감을 소모하며 살았을 그의 삶을 공감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전략적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기분 상할만한 말들만 골라 나불대던 시부모의 인중을 쥐어 박게 하고, 거기다 그 완벽에 가까운 무심한 회복탄력성 좋은 그의 남편의 꿀밤을 주게 만들고 싶은 요량은 아니었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진심 그리해 주고 싶었다.

 

근데 이 책은 그렇게나 힘들던 그의 삶에서 빚어진 겸허한 철학이 담긴 것과는 다르게 재치와 재미를 겸비한 그의 문장에 책장은 훌떡훌떡 잘도 넘어갔다. 심지어 질병을 넘어 장애를 자연스럽게 궤 안에서 만지작거려준 그가 고맙고 또 미안했다.

 

202쪽, 바퀴의 균형

 

"결국 다르게 산다는 건 인생에 이벤트를 많이 끼워 넣는다거나, 통째로 삶을 전복시키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주인으로 살 수 있는가'이더라고요." 219쪽, 에필로그

 

다르다는 걸 이해하자면 정말 꼭 필요한 책이다.

 

PS.

악! 이런! 내가 강의에 매번 끌고 들어가는 그 드라마의 딱 그 대목을 그가 책에 실었다. 내 강의를 들은 사람이 그의 책을 베낀 거라고 오해할 판이다. 그렇게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되니 반갑기도 하고 으쓱 하기도 하다. 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내게도 탑재돼 있는 거 같아서. 흐흐.

 

그리고 뒤표지에 그가 쓴 대로, 오래오래 살아서 언제가 일지 모를 내 이야기를 그대 이야기를 똥구멍에 털 날 두려움 따위 잊고 읽어 버린 나처럼 그대도 읽어주길 바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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