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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시간이 하는 일 - 지난 시간이 알려 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by 두목의진심 2022.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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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인생이라는 게 계획대로 마음먹은 대로 될 턱이 없음을 알기에 안달복달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고 내 아이들도 그렇게 살지 않길 바란다.


딸아이가 정시 원서를 내놓고서 지원자 수를 지켜보면서 한숨과 자책을 하는 모습을 본다. 오늘은 퇴근한 아빠에게 전문대에도 혹시 모르니 원서를 써야 할 것 같다면서 그렁한 눈을 맞춘다. 시험을 망친 탓에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얼굴이 다 뒤집어질 정도로 아토피가 재발했다. 녀석은 제 속도 말이 아닐 텐데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보태져 하루가 지옥일 게 뻔하다.


이제 20년 인생에 1년은 별거 아니고 낭비한 것도 아니라서 천천히 하고 싶은 걸 찾아봐도 된다, 고 했지만 딸아이의 인생에 대학은 어떤 의미일지 속단할 수 없으니 그저 기다려 주는 수밖에. 그러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게 없어지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는 작가의 말이 어찌 와닿지 않을까. 조용히 딸아이에게도 전한다. 덧붙여 다소 느리지만 천천히 네 걸음으로 너의 보폭으로 거닐길 바란다고도.





잘 버리지 못하던 것들에서 물건을 버리는 일은 마음에 담아 둔 기억을 버리는 일이고 결국 생각을 버리는 연습이라는 말에 멈칫한다. 나는 버릴 것일이 수북이 쌓여있음에도 여전히 쌓고만 있을까 싶어서. 버리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 갈수록 관계는 적어지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나에게 없는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을 때보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그걸 갖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좌절한다." 91쪽, 잘나가는 친구


어쩌면 이 시대 모두의 초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만 보고 죽어라 달려야 며칠의 안정을 맛볼 수 있는 월급은, 그 존재감이 찰나여서 영끌해야만 그나마 만져볼 수 있는 돈을, 투기에 가까운 투자라고 믿으면서 털어 넣을 때의 불안감. 누군가의 차이 나는 클라스의 돈놀이로 어느새 벌어진 격차에 한숨짓는 사람들이 주변에 천지삐까리로 넘친다. 에이C 쓰다 보니 내 한숨이 제일 크게 들리는 거 같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매번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는 작가의 말을 살갗을 파고드는 뜨거운 사막에서 질식하기 직전 목을 축이는 한 모금 생명수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퍼올린다. 그런 내 인생의 수많은 오류가 내 아이의 오류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나은 선택을 도와줄 한줌 지혜가 있으면 싶다.


그럴 줄 알면서 매번 해야 하는 선택은 후회로 남는 경우가 허다한 인생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는지는, 처한 상황이 어떻든 자신에게 보다 나은 방법을 찾으려 애쓸 때야 비로소 보다 나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린 많든 적든 선택에서는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인생이고.


체육학을 전공하던 시절, 운동이 좋았고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뜻하지 않게 사고가 났고 난 더 이상 운동은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극한은 힘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 몸으로 복학을 했지만 동기나 후배들이 땀 흘리는 공간에 같이 있다는 건 큼지막한 알사탕이 목에 걸린 듯 답답하고 괴로웠다. 내가 하면 저들보다 훨씬 잘 해낼 텐데,라는 생각과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는지, 하는 자책이 동시에 휩쓸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후에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고 애써본 덕에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하고 싶었던 체육 선생님은 여전히 가슴 한켠에 이루지 못한 꿈처럼 남았다. 어쨌거나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 앞에서는 뒤가 아닌 앞을 보고 숨을 마셔야 더 잘 보인다. 그래야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바라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깊이 숨을 들이 마셔 본다.





한숨이, 어이없음이 단전을 들끓게 한다. 역무실에서 CCTV를 확인하고 복사한 후 그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면 자신도 일상이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지긋이 천천히 알려 주어도 좋았을 텐데.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건 복수가 아니라 친절 아닌가. 지금도 어느 역에서 바삐 뛰는 누군가에게 다리를 디밀어 지옥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 나쁜 자식이.


"이제는 어느 정도 선을 그을 줄 안다. 지금 마음을 주되, 미래의 그 사람에게까지 마음을 주지 않는다. 내일 그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 네가 그럴 줄 몰랐다며 섭섭해하지 않기로 한다." 166쪽, 한때 고마웠던 사람



읽으면서 답답함이 꽤나 있었다. 작가는 삶에서 참 많은 관계가 어려웠겠다는 생각 그런데 어느 정도 시니컬한 마음으로 타인의 감정에 본인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것처럼 보여 안도감도 든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잇고 끊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내 감정은 곪아 가는데도 유지하려 애쓰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런 관계는 끊어내도 사실 별로 티도 안날 경우가 많다. 나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나를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가 쌔고 쌨다. 내 절친과 그의 절친은 분명 다르다. 우리 착각하며 살지 말자, 라는 생각은 50년 넘게 살아보니 깨닫는 좋은 일 중에 하나다.





이 책은 이런 휘청이는 관계가 별것 아닐 수 있음을,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은 밖이 아닌 내 안에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고 위로받는다. 어디쯤 잘못 꼽혀 있을지도 모르는 책처럼, 마음을 잘 살펴야겠다.





작가를 잘, 아니 아예 모른다. 혹시나 그의 책을 읽었는데 잊었을까 해서 오랜 기록들을 뒤적여봐도 찾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차분해지고 섬세하게 뒤죽박죽 엉망이던 감정이 마구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마치 뒤엉킨 큐브 색깔을 하나하나 맞춰 나가듯. 딱히 내가 널 위로해 줄게, 라며 티 내지 않아도 그냥 위로가 되는 책이다. 타인의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이리 많이 비치는지. 스며들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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