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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심리/낭독리뷰]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 - 아직도 나를 모르는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여행

by 두목의진심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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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머리칼 날리는 표지에 매혹되어 읽고 싶었던 책인데, 책장을 열고 보니 서문부터 묵직하다. 나는 사는 게 재미있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를 열광시킨 영드(영화 같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456억을 두고 벌이는 생존 게임이 아니라 사느라 죽어버린 '재미'를 살려보려는 욕망에 관한 게임이었다. 어쩌면 저자가 말한 재미가 없으면 생존의 의미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지속시키는 에너자이저인 재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무료함이나 무기력이 어디서 오는지 자신의 감정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안내서다. 여기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 하나는, 도대체 나는 무슨 재미로 살고 있을까다.

 

 

감정적, 소위 빡침이 감정과는 다른 동네의 이야기라는 설명에 순간 얼어붙었다. 나는 빡침의 세계에 자주 빠지는 편이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내 감정 조절을 잘못하는 인간으로 분류되어 있다. 근데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니 화가 나는 것은 감정이고 그 화가 분출되는 게 빡침인데 왜 다른 동네의 이야기인지 시원하게 이해되지 않아 살짝 고구마 100개 정도 입에 넣은 느낌이 들었다.

 

내 안에는 '분노 조절 버튼'이 있을까? 아버지의 분노를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되레 자신이 병을 얻었다는 사례를 보면서, 여차하면 나도 모르게 눌러대는 이 버튼으로 우리 아이들이 주눅 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툭하면 울컥하고 조절이 잘 안되는데 이제부터라도 노력을 해봐야겠다 싶다.

 

저자는 감정 알아채기, 엄마가 아닌 모성을 바탕에 둔 독점욕, 죽음에 대한 직면 등 감정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자신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는 '감정 공부하기'를 돕는다.

 

"당신의 느낌은 언제나 옳다."로 시작하는 '직감'이라는 부분에 대해 저자는 확신을 가져도 좋다는 말과 함께 그 느낌 다운 느낌이 '생존'을 위해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으려면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데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 새삼 흥미로워지는 부분이었다.

 

 

좀 더 추가해 보자면, 저자는 불안과 두려움이 생기는 지점부터 시작해 이를 통해 나타난 신체 변화로 불안(Fear)를 알아채고 두려움에 기인한 불안을 줄여나갈 방법을 찾는 시킹(Seeking), 그리고 이런 불안의 원인에 대한 분노(Rage)를 어떻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한데 깊은 단전에서 끌어 올려진 빡침은 보통은 그다지 유용하게 작동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니 정신이 번쩍 났다. 빡침이 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니 재밌다.

 

감정의 시그널에 대한 설명은, 일상에서 자주 나는 그런 편인데 내가 좀 예민한가 싶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런 감정의 촉은 앞으로 벌어질 관계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데이트 폭력이나 왕따, 바람난 상대 같은 관계의 변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일 수 있어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촉'을 떠올리니 왜 부정적인 것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슬픔, 그것은 곧 '내가 많이 아팠구나' 공감해 주는 것이다. 슬픔을 '체감'하는 과정은 과거에서 현재로 빠져나오는 유일한 통로이다.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을 온몸으로 절절히 느끼는 바로 그때가 슬픔을 녹여 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슬픔은 '슬픈 느낌의 순간'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행해지는 '의식적 행위'에 가깝다." 198쪽

 

이어 감정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감정의 역동성에 관한 설명에 슬픔이나 재미를 포함해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다.

 

 

이 책은 무의식이나 이드, 자아, 초자아 등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한다. 한데 이런 내용이 은근 전문적이기도 해서 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설렁설렁 읽게 되지 않고 마음의 양식을 챙겨 먹듯 꼭꼭 씹어 읽게 돼 꽤나 느린 독서가 된다.

 

반면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점은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있었으면 읽는데 좀 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설명이 많아서 일반 독자에겐 딱딱한 점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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