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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사회/낭독리뷰] 헌법에 없는 언어 - 생각보다 헌법은 구체적입니다

by 두목의진심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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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헌법이 구체적이라는 문장에 호기심이 났다. 헌법 하면 평등이나 불평등 아니면 약자나 정의 등 익숙한 단어가 아닌 명확하게 실체도 없이 무턱대고 구체적이라니 당황스럽다. 단 한 번도 법은 보통 사람의 편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게 소위 말하는 돈 없고 백 없는 약자라면 더더구나 법은 구체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터라 대놓고 구체적이라 선언부터 하는 것이 막연하고 상당히 추상적이라고 생각돼서 더 궁금했다. 무엇이 구체적일까?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검경의 사건 조작과 재판부의 무능으로 살인 누명을 쓴 두식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은 변호사를 어떻게 사야 하는지도 몰라서 감옥에 가야 한다"라고. 법이 돈 없고 백 없는 사람에게도 평등할 순 없을까.

 

법은 규범이고 규범은 사람 간의 약속이다. 그래서 법은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하고 사람을 살려야 한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것이 권력이나 재력을 덮어쓰면 투미해진다. 구체적이지 않고 사람을 필요에 의해 배제하고 죽인다. 법을 몰라도 약속을 지키고 사는데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약자는 선한 게 아니라 모자란 사람으로 내몰려도 스스로 변호할 힘이 없다.

 

과연 우리는 아니 나처럼 보통이거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약자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조차도 이 책을 읽는 것으로 헌법의 효능감이 생생하게 살아날까 진심 궁금해 몰입하게 된다. 내용은 판결이 쌓이면 판례가 되고, 그게 굳으면 법리가 된다면서 판례를 통한 사례로 법을 설명하는데 민사와 형사 거기에 헌법 조문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롭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딱딱하고 어려워 읽어 내기 쉽지 않다.

 

특히 판결과 관련해 3심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가 법적 판단을 하는 사법부의 사회적 견해나 가치관의 반영을 고려한 이유라니 솔직히 법리적 해석을 인간이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법관 개인의 가치관이나 인격에 따라 법정에 선 개인이 천국을 오갈 수도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도대체 항공기 운항의 안전과 턱수염이 뭔 관계가 있다고 퇴사를 고려해야 하느냔 말이다. 그래서 감정이 배제된 법리만으로 판결한다는 AI 판사가 등장하는 게 머지않았다고 입을 모으는지도 모르겠다.

 

49쪽

 

 

내용에 많은 사례와 사견을 담으려 했는지 모르겠으나 페이지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는 활자들이 종종 길을 잃게 만든다. 방금 읽은 문장인데 처음처럼 새롭게 읽혀 내심 당황스럽다.

 

62쪽

 

 

문제를 다루고 싶지도, 수없이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도 제시된데다 수많은 해외 사례도 있고 외국 노동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 황당한 상황에 한국 법률가는 고작 부끄러워진다고 한다. 한국의 노동자인 나는 고작 몇 줄을 읽는 것만으로 피가 거꾸로 치솟는데 말이다. 한국의 법은 분명 약자를 위한 법이다. 대항하지 못할 수준으로 약자를 옭아매는 데 최적화라도 된 것 같으니 말이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이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특정 분야는 건드리지 않는다. 기자나 의사, 급발진 같은 차량 결함 등 일반 시민이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서 법은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당연히 보장된 권리를 행사했음에도 수억 원씩 징벌적 손해배상을 때리면서도 약한 노동자가 아닌 기업의 이익을 우선 적용하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사실 법조계가 양승태나 윤석렬 이전에도 정치적 이익에 따라 말과 양심(신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법조인이 없지는 않았을 터지만 개인적으로 두 인물 이후 더 이상 법조계는 '정의' 나 '신뢰' 같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집단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최고법원만큼은 중요한 법적 쟁점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 72쪽

 

이 책은 헌법 혹은 법률 언어 이면에 일반 시민들이 미처 읽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겼다. 헌법적 기본권부터 노동법, 이소노미아의 평등권을 비롯 소수자 특히 장애인의 차별적 요소에 대한 평등을 요구할 필요에 대해 언급한다. 분명 장애인으로서 고무적인 문장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 법은 그러니까 장애인 차별 금지법(정확한 명칭은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다)은 2007년 제정이래 여전히 답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필요성에는 동의해서 제정은 했지만 시행은 또 다른 문제로 치부된다. 예를 들어 어느 음식점에 장애인이 들어 가지 못해 음식을 제공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누구나 접근 가능해야 하는 문제에서 차별받은 것이다. 점주는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을 법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개선되지 않는 것은 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처벌이 아닌 권고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현재 차별을 당한 당사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하면 인권위는 조사 후 대부분 시정 조치를 권고한다. 아주 드물게 '악의적' 차별이 확인되면 처벌(제49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지만 악의적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의 권리, 다시 말해서 법 앞에 모든 국민의 권리가 평등하다는 문장에 장애인도 당연히 포함되는 사실과 이런 당연한 권리를 침해했을 때는 여타 사건들과 같이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면 굳이 평등을 요구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137쪽

 

 

솔직히 이 책은 딱딱한 법률적 언어와 문장 안에서 읽히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문장에 감춰진 이유를 설명하려 애쓴다. 대법원의 판결문에서 어떤 문장은 일반인 혹은 법률가의 눈높이에서 어떻게 읽히는가에 대한 설명하고 때론 아쉬워한다. 그래서 읽으면서 저자를 법률가로서 지지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마지막 표현대로 헌법의 세세한 부분을 일반 국민이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대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선 이 책은 보이지 않는 헌법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런 점에서 읽는 것만으로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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