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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낭독리뷰] 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

by 두목의진심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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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더구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이 없다'라는 광고를 인상 깊게 기억할 만큼 흥미로운 구루의 나라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데다 추리소설이라니 개인적으로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다.

 

무작정 읽다가 '아들 하나를 포함한 유족이 있다.'라는 문장이 이 소설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문장을 둘러싼 퍼빈의 생각에서 인도 여성 인권의 문제가 읽혔다. 21세기인 현재에도 문화 혹은 종교라는 미명하에 종종 자행되는 일들. 한데 아내조차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저 유족 중 하나로 포함해 버리는 이 간단 명료한 문장에 과거 내 어머니 유년 시절도 인도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머니는 "쓰잘데기 없는 가스나가 공부를 해서 무엇 하냐"라는 할아버지의 핀잔을 들어야 했고, 갓 시집왔던 할머니는 안방 밥상이 아닌 부뚜막 아궁이에서 밥을 먹어야 했었다는 이야기는 희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불평등일지 모른다.

 

89쪽

 

절대적인 남성 중심 아니 우월주의에 휩싸인 시대, 하지만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진행 중인 이 낡고 불합리한 인식이 팽배한 인도에서 스치듯 만난 남녀 사이에서 튄 스파크가 순식간에 화염이 될 수 있을까 의심되긴 하지만 첫눈에 불타버린 퍼빈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랑은 읽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황홀하지만 그만큼 어지럽다.

불안하던 사랑은 점점 현실로 각인되듯 퍼빈을 둘러싼 여성 그것도 아내로서의 지위나 존재의 하잘것없음이 느껴진다. 도대체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하고 먹먹한 데다 분노로 거칠어진 호흡은 쉽게 평정되지 못했다.

289쪽

 

소설은 퍼빈의 결혼 전과 후의 이야기로 ​1920년을 전후의 인도를 배경으로 한다. 어쩌면 상당히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곳 봄베이는 그런 변화의 중심이었을 테다. 다양한 종교와 신분 계층이 트라이앵글처럼 구성된 곳에서 하층민의 인권은 당연스럽게 무시되던, 더구나 그저 남성의 재산처럼 치부되던 시대에 여성의 인권은 말해 무엇하랴 싶다.

아무튼 소설은 이런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열린 부모 밑에서 자란 봄베이 출신 첫 여성 사무 변호사 퍼빈의 시선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여성 인권의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할 때쯤 절묘하게 퍼빈의 의뢰인과 연루된 살인사건 추리물을 넘나들며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숨 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작가는 여성 인권의 문제, 영국과의 시대적 상황, 종교와 일부다처제라는 문화에 추리 소설 형식을 덧입혀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하는데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끝까지 어우러지게 만든다. 어깨에 힘을 잔뜩 줄만큼 긴장을 유지해야 할 만큼 속도감 있는 전개는 아니지만 독자에게 여러 감정을 선사할 만큼 섬세함과 힘이 있다. 낯설지만 흥미롭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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