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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어른의 무게 -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누구나 어른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by 두목의진심 202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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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그랬다. 그동안 종종 '어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묵직한 질문에야 선뜻 대답도 읽을 용기도 나지 않아 머뭇댔다. 이름도 장한 사람인 작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나 되지만 누구나 어른으로 사는 건 아니"라고. 그렇다면. 나는 그 무게를 견디고 있는가. 무사히 그리고 기꺼이?

 

아... 어쩌면 좋지? 더 읽어야 하나? 고민 한다. 시작부터 잠에 대한 그의 단상이, 그 깊은 황량함과 피폐함이 고스란히 활자에 눌려 옮겨 오더니 기어이 눈물을 짜내 버렸다. 뿌해진 시야에 한참을 읽기를 멈춰야 했다.

 

한마디를 덧붙일까 말까 망설였다. 최악의 인사고과를 받던날 퇴근길에 괴로움과 더러움을 씹고 집에 들어가던 그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웃는 일이 괜찮은 걸까 싶었다. 나 역시 괜찮은 척, 안 그런 척 하는 일이 익숙한 만큼 그의 마음이 걱정됐다. 그냥 말하고 덜어내는 게 살아남는 거다.

 

 

“직장에서는 이미 소멸하고 있어요. 그런데 글 쓰는 취미는 저를 활기차게 만들어요.” p79

 

가면을 써야만 사회이고 직장생활이 가능하다는 그의 말이 충분히 공감되면서도 그 힘겨움까지 공감되다 보니 마음은 쉽지 않다. 감정을 가면 뒤에 구겨 넣는 일, 솔직히 그걸 잘 못한다. 나는. 그런데다 소멸하는 내 존재를 각인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하지 못하는 처지여서 더 잘 써야 하는데도.

 

 

줄곧 가르침을 받는 자세로 활자를 따라간다. 관계, 처세 그리고 자각하는 이야기들은 그가 이미 깨닫은 일들인데 나는 버젓이 하고 있는 일들이어서 남 이야기로 쉽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어른이 쉽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속마음을 던져야 직성이 풀려도 후련함에 앞서 상대의 기분을 헤아려야 한다." p132

 

원래 그러지 않았다.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행동하던 시절은 지금 생각하면 늘 후회를 곱씹게 되곤 했다. 직업훈련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강사들이 돌아가며 토요일 당직을 서야 했다. 집에 급한일이 생겼다, 아이가 아프다, 교회를 가야한다는 동료들의 부탁에 한두번 들어 주었더니 다들 '예스 맨'이라며 치켜 세웠다. 그러다 일이 있어 거절했더니 싫은 티를 팍팍 내서 오히려 당황한 적이 있었다.

 

개그맨 박명수가 그랬다. "참을 인 세 번이면 호구다"라고. 그래서 사람좋다는 말은 상대를 호구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후부터는 타인의 감정에 내 감정이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직설적인 감정을 보였다. 종종 불편한 반응도 있지만 대부분 명쾌한 선을 유지 하긴 한다. 하지만 직설적이라기 보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편으로 느껴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한마디 한마디 조곤조곤 이리 가슴에 쿡쿡 박히는 말을 참 잘한다 싶다. 그래서 여기저기 따끔 거리는 중이지만 내가 그래왔던 일들을 반성도 한다. 그리고 그처럼 침묵을 익힌다.

 

 

"'내가 판단하는 나'와 '남이 판단하는 나'는 엄연히 다르다.현실적이고도 무서운 말이다." p212

 

과거 나는 항상 능동적으로 행동했다. 걷는 것보다 뛰는 일이 많았고 무슨 일을 하던 강한 추진력으로 스스로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소위 인싸. 그러던 내가 사고로 몸을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수동적으로 바꼈다. 친구들이 가자면 가고 말자고 하면 하지 않았다. 인싸가 아닌 아싸가 됐다. 점점 더 소심하지만 관계는 부드러워 졌다.

 

그런 내게 친구가 그랬다. "너 목 잘 부러졌다. 너 사람됐어". 그동안 의견이 분분한 것들을 정리하고 추진하면서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저 친구들이 급하고 지랄 맞은 내 성질을 맞춰준 것뿐이었다. 이렇게 세월이 더해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 같은 것들이 하나 씩 더해지면서 어른이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이런 작가의 혜안이 따뜻하게 하루를 만들어 준다. 이 책이 좋은 이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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