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지는 음침한 거리, 우산을 든 여인이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뒤를 따르는 그림자. 여자는 이상한 느낌을 뒤를 돌아보다 뛰기 시작한다. 첫 장면은 <사랑하는 금자씨>의 오마쥬였던걸까. <살인 의뢰> 역시 잔혹한 살인마에 대한 복수를 담는 영화라는 점을 보면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사이코 패스적 살인마에 대한 봐왔던 영화 중에는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살인의 추억>이나 <추적자>,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의미없이 퍽치기를 조명했던 <아일드 카드> 등도 좋았지만 <살인 의로>는 전개하는 방식이 드러나지 않는 살인마를 쫒는 형식이 아니라 대놓고 살인마를 드러내 놓고 "함께 복수하자!"라는 식의 직설적인 감독의 표현 방식이 맘에 들었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두 가지 민감한 윤리적 부분을 던지며 "도대체 뭐가 옳으냐?"며 관객들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던진다. 이 부분도 정말 좋다.
살인마 조강천(박성웅)은 여자들만 노리는 연쇄 살인범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그저 카타르시스를 위한 살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살인을 하며 짖는 특유의 그의 미소는 그렇게 생각을 작위하게 만드므로. 하지만 독방에 갖힌 강천은 끝임없이 운동을 하며 환영으로 등장하는 자신이 살해한 여인들을 보며 "쓰레기 같은 것들"이라며 혐오를 나타내는데 강철이 왜 여인들을 혐오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좀 곁들였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좀 남는 대목이었다. 반면 느슨한 형사인 태수(김상경)은 <살인의 추억>에서 의욕적이고 빈틈없는 형사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려 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슨하다. 그럭저럭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의 요즘 약간 느슨한 배역들도 잘 어울린다는 반응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한 후 가족이 살해 당한 계기로 분노와 절망을 오가는 그의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전부였던 사랑하는 아내가, 그것도 그토록 바라던 임신까지 한 아내가 사라지고, 시체로 발견됐다는 소리를 듣고 미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을까. 착하디 착한 은행원 승현(김성균)의 선택은 죽음이었지만 그 역시 맘대로 안되자 복수가 죽을 수도 없는 그의 선택이었다. 나약한 은행원이 전문 킬러가 된다는 설정은 어딘가 좀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는 정상이 아니라 이미 반쯤은 짐승이 된 상태였으므로 3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여하튼 <살인 의뢰>는 이렇게 3명의 중심 인물로 위에 언급했던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인권 보호" vs "사적 복수"라는 질문인거다. 먼저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사형제 폐지는 문제점이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저런 놈들을 왜 세금으로 먹여주고 재워줘야 하는가"라는 대사를 포함해 사형제 폐지로 인한 강력범죄가 늘고 있다는 의미를 넌지시 드러낸다. 게다가 우습게도 얼마전 SNS에서 돌았다시피 미국의 경찰이 강력범죄자를 검거 했을때는 범죄자는 모자이크는 커녕 모자도 벗기며 얼굴을 공개한다. 하지만 범죄자의 팔을 붙들고 있는 경찰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왤까? 다른 범죄자에게 경찰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므로서 범죄자들에게 그의 안전과 그의 가족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인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범죄자는 얼굴을 가려주고 경찰의 얼굴은 공개한다. 왤까? 공명심이다. 내가 잡았다는 경찰의 공명심으로 그의 안전과 그의 가족들은 안전에서 왜면 당하는 거다. 어처구니 없게도 말이다. 범죄자의 인권이라.. 연쇄 살인마의 인권이라.. 그리고 "사적 복수"라는 측면은 가족을 잃은 경찰이 범죄자를 잡고 그를 죽여야 하나 마나에서 갈등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과연 사람이기 전에 경찰인가, 경찰이기 전에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감독은 여러 차례 대사를 통해 "경찰의 할 일"을 강조한다. 경찰의 할 일에 대한 해석을 어찌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닿자 그동안 경찰은 이런 민감한 부분에 자신들의 할 일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할만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쌍용 사태"나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잦은 시위와 집회에 당연스레 벌이는 "폭력"은 범죄자가 아닌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좀 논리를 확장시켰지만 어쨌거나 "경찰 자신들의 할 일이 뭐냐"는 대사에는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승현이 강철을 빼돌리고 사적 복수가 아닌 사랑하는 아내의 시신을 찾고자 하는 절규에도 강철의 태도는 누가봐도 인권을 적용해야 할 대상이 아닌 짐승이었으므로 그냥 죽여도 되지 않았을까. 그저 사회적 여론이 집중되었다는 이유로 전전긍긍하는 경찰의 수뇌부 역시 그냥 같이 쓸어버려도 되는 인간들이었고. 마지막 "사적 복수"라는 이유로 망설이는 장면에 경찰인 태수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과 경찰인 태수가 쏜 총에 강철이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분명 다른 감정이다. 태수가 맞는 것은 "분노"요. 강철이 맞는 것은 "통쾌"였다. 나만 그런가. 암튼 태수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기석아, 나도 좀 살아야 하지 않겠니"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이 연쇄 살인마의 손에 이유도 없이 죽었다면 그들이 짊어져야 할 분노의 크기는 도대체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죽어라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로 전혀 죄책감이나 뉘우치지 않는 범죄자를 지켜줘야 할 인권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끊임없는 질문이 된다. <살인 의뢰>는 무거운 주제였지만 우리나라 공권력을 가진 집단은 꼭 봐야할 영화가 아닌가 싶다. 어떤게 시민을 지키는 것인지. 어때야 인권인지 말이다. 근래 봤던 영화중에 단연 최고였다. 특히 강철로 빙의된 박성웅은 예전에 탁구 빵만드는거 도와주던 사람 정도로 알았는데 이 영화에서 완전 소름돋는 배우라는걸 알았다. <살인 의뢰>의 씬 스틸러다.
글 : 두목
이미지 : 다음 이미지
'마음가는데로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험한 상견례2] 코미디를 위해 억지스러움이 필요했다고 해도 너무 심했다. (0) | 2015.05.08 |
---|---|
[헬머니] 통쾌한 속풀이가 아닌 답답한 욕이다. (0) | 2015.05.05 |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천재이기에 앞서 소수자의 아픔을 조명한 영화 (0) | 2015.05.02 |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 The Avengers: Age of Ultron] 소문난 잔치에 먹을꺼 진짜 없다는 느낌 (0) | 2015.05.01 |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 요녀석, 그걸 기억하고 있었구나. (0) | 2015.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