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와 죽음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던 백세희 작가의 이야기나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온다고 힘주어 보여주던 드라마처럼 양극단을 오가는 조울증이 보여주는 세계는 내게는 이해와 공감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멘탈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닌데 잘 무심해지기 때문일지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으면서도 원래 사는 게 만만치 않고 보통의 삶도 버티는 게 죽을 만큼 힘든 거 아니냐고, 다들 그만 그만한 관계의 상처를 내고 입으면서 온몸이 너덜너덜 한 채로 버티는데 뭘 그리 유난일까 싶기도 했었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그래서 지금은 조금 더 공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1형과 2형의 차이가 뭔지, 우울과 우울 삽화의 차이를 모르지만 2형 조울을 10년 넘게 앓고 있고, 먹고 살기위해 의사라는 신상을 가린다는 귀여운 고백을 앞세운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라니 놀랍다.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간호사 다은을 보며 이 시대를 사는 동안이라면 정신질환은 누구도 예외는 없다는 사실이 더욱 공감된 것처럼 이 책 역시 그런 생각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와 직면하는 자신을 보면서 나 역시 그리 유쾌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단정하는 '나'를 직면하고 말았다. 나는 왜 유년 시절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사소한 일에도 버럭 하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잘못이라 하면(이것도 내 기준이지만) 용서가 쉽지 않은 성격이 된 데는 내 유년 시절 때문은 아닐까. 부모에게 원망을 쏟아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억을 끄집어 내서 곱씹어 보기는 두렵다. 이런 아빠를 내 아이들도 그렇게 기억하고 원망할지 모르겠다.
그가 익숙하지만 끔찍했던 순간이었다는 문장들을 곱씹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울 삽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때때로 나도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뜬금없이 불면의 나날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감각들이 폭죽처럼 동시에 터져 머릿속을 헤집진 않으니까. 그를 이해한다고는 감히 말하기 어렵다. 어쩌면 나는 우울을 경험해 보지 못한 걸지도.
"하지만 질문의 화자가 나 자신일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나는… 나니까.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어봤자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으니까." 121쪽, 불면
불면을 숙면으로 바꾸는데 술과 수면제를 동시에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모든 일에 체념한, 그래서 어찌 되든 관계없는 게 아니냐는 무감각한 표정이. 그가 프롤로그에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못한다고 밝혔듯 읽다 보면 차마 이런 의사에게 내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게 도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섭다.
그는 그의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그냥 '운'이 없어 걸린 것일 뿐일지도 모르는 정신질환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지난한 과정을 가감 없이 전한다. 한편으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임에도 유독 심한 차별적 낙인을 찍어대는 사회에 대한 절박함 마저 느껴진다. 대부분의 글을 경조증 기간에 썼다지만 글은 한없이 차분하면서 막힘없이 술술 읽혀 더 몰입하게 된다.
그리 높지 않은 자존감으로 '척'하며 버티는 일상이라 조금이라도 높여보려면 오늘부터 대답이 좀 더디 돌아 온다고 하더라도 물어야겠다. "두목아, 지금 뭘 하고 싶어?" 라고.
요즘 복지계에서도 정신보건 쪽이 화두라 정신질환 관련 교육을 좀 듣는 편이어서 정신장애에 관심을 두었다. 정신질환은 한번 걸리면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는, 완치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마지막 그의 간절함이 담긴 자주 우울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가 양극성장애를 극복해낸 전사도 아닐뿐더러 관해 혹은 완치를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경험자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보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전하고 싶은 것이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병식이 생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괜찮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으로 많은 자주 우울한 누군가는 많은 위로를 받을지 모르겠다. 그가 공공연하게 커밍아웃 하진 않더라도 의사도 겪는 2형 양극성 장애라면 누든들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희망적이지 않을까.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의 용기를 칭찬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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