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태주가 시를 맡고 향기작가 한서형이 향을 맡았다는 독특한 시집, 잠시향은 책장을 열자 깊은 숲 속이 열린 것처럼 피톤치드의 향이 코끝에 상쾌함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먹 냄새 같다고 했는데 가만히 코를 대고 킁킁거려 보니 정갈하게 갈아 놓은 먹의 향 같기도 해서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살냄새 외에 다른 향기를 덮는 걸 좋아하지 않아 향수도 쓰지 않는데 잠시향의 향기는 싫지 않다.
어쨌든 향기시집 답다. 친절하게 책 사용법도 있다. 잠시향이 잠을 위한 향기인 줄 몰랐다. 하여 난 출근 후 짬이 난 시간에 시집을 펼쳤다. 코 끝을 책 어딘가에 처박고 자연스럽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어디에서 이렇게 상쾌한 향기가 묻어날꼬. 밤이 아닌 아침이라 그럴까? 잠은 오는 게 아니고 달아난다.
나태주 시인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잠에 도움이 되는 향기를 궁금해하자 한서형 향기작가는 거뜬하게 그런 향기를 만들어 내어 펼치면 기분 좋은 향을 담았다. 거기에 간결한 잠언과 시인의 시 99편이 오늘 하루를 향기롭게 마무리하게 돕는다.
<그러므로>를 읽는데 '내' 앞에서 서있다는 천국의 사람이 보였다. 다름 아닌 아내다.
시인의 시와 잠언은 유독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고요하고 평안하게 그리고 이 좋은 향기에 취하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훌훌 댄다. 오늘 평안한 잠에 취할 수 있겠다.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137쪽, 사는 법
잠에 대한 생각을 두 사람의 인터뷰를 에필로그로 담았다. 잠은 잠시의 죽음이라는 시인의 거침없는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아침에 깰 거라는 믿음이 있어 불안하지 않은 삶이라는 고령의 시인이 부럽다. 이틀에 한번은 불면의 밤을 보내는 나로서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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