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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by 두목의진심 202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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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낯익은 이름인데 그의 책이나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가 타계한 이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대로 여러 잡지에 실었던 시사 칼럼을 추려 55편을 옮겼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떤 창으로 열려 있을까.

 

우연찮게 어제 TV에서 요즘 학생들의 어휘력 문제를 조명했다. 이런저런 스피드 퀴즈 형식의 장면과 뒤를 이어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어려워 한 단어가 '글피'였다. 심지어 처음 들어 봤다는 학생도 있다. 어쩌면 요즘을 사는 우리는 '오늘'만 살 것처럼 현재에 집중하다 보니 내일도 모레도 어렵다. 그러니 그다음인 글피를 꿈이나 꿀까?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한데 에코 역시 요즘 사람들의 과거 인물에 대한 무지와 가짜 뉴스의 심각성에 주목하는 이야기는 어딘가 방송과 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아, 가짜 뉴스가 아니라 허위 조작 정보라고 해야 옳다. 또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이런 허위 조작 정보를 양산·유포하는 기자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어쨌거나 에코가 날카롭게 꼬집는 문제는 현시대, 우리의 문제다.

 

또 다른 이야기로 현대인들이 미디어에 얼굴을 내밀고 싶어 하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이런 미친 짓이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하다"라며 다양한 형태의 관종들을 예로 들면서 대놓고 조롱하기도 한다. 더욱이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들, 그러니까 뭘 먹고 어딜 가고 누굴 만나는지 같은 일련의 행동을 온 동네 떠벌리는 <고백 사회>라고 표현하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78쪽

 

입이 바짝 마르고 씁쓸해지는 꼭지가 있다. 뭐 거의 모든 꼭지가 맘 편한 곳이 없을 지경이긴 했으나 더 그랬던 부분, 한 학생의 업심여김이 잔뜩 느껴진 '교사의 자취'를 묻는 질문에 그는 자조를 섞어 "과거 학교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는데 요즘은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딱히 반박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해 씁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온라인에 떠도는 불분명한 정보를 여과하지 못하고 덥석 받아먹는 게 아니라 필요한 정보로 다듬는 법은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또한 반박할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가 평생학습이라는 배움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확실하고도 직설적인 그의 정신세계를 솔직하게 담아낸 듯하다. 다시 고백하건대 그의 작품이나 글을 접한 기억이 없는지라 은근하게 비꼬는 논조는 다소 불편한 점도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대부분 사회 문제가 되는 현상들을 개인의 입장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나온 것이라서 그의 생각에 더해 독자의 사유를 얹어 볼 만하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과거에 대한 철학, 인터넷에 철학을 잊은 현재, 문학, 문화, 종교와 글쓰기까지 다양한 단상이 담긴 이 책은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라니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된 듯 푹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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