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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여행/에세이] 나에게 마법 걸기

by 두목의진심 2018.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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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던 광고 카피는 내게 인도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그 이후 늘 인도는 내게 언제나 갈증이었다. 휠체어를 끌며 저곳을 부유하듯 떠다닐 수 있을까. 갈 수 없는 아니 가기엔 두려운 나라 인도는 책으로만 가는 곳이다.


"꿈같다. 인도에 있을 땐 내가 한국에서 살았었나를, 한국에 있으니 내가 인도에서 살았었나를, 자라난 애들을 보면 내가 애를 낳았었나를, 생각해 본다. 마법 같은 날들이다." p5


얼마나 크게 설레어야 그 설렘으로 몽롱해질까? 작가에겐 첸나이가 그렇고 인도가 그렇다고 하는데 여전히 내겐 인도는 목마름이다 그것도 타는 목마름. 타인의 시선으로 타인의 감정으로만 공감해야 하는 인도의 끈적함과 짙은 향기는 어지간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동안 여행했던 책들에서는 매번 비슷한 끈적함과 향기와 설렘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마법 걸기>는 조금 다르다.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거주자의 시선의 차이일까. 끈적하지만 텁텁하지 않은, 진한 향기지만 왠지 익숙해진 그래서 역하지 않은. 어쨌거나 5년의 인도 생활이 담긴 작가의 이 책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의 궁전 같은 아파트의 생활이나 집안일을 도와주는 인도인들의 대비되는 삶. 예컨대 신이 보고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사람과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의 간극. 이런저런 인도의 생활 상이 살짝 담겨 흥미롭다.

여행 에세이가 아니지만 어차피 작가의 시선이 담긴, 조금은 낯선 곳들의 이야기는 작가의 섬세한 표현으로 충분히 눈부시지만 더 빛날 수 있도록 사진이 함께 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다. 시바의 링감과 요나가 안치된 촐라 왕국의 브리하디스와라, 신들이 축복하는 디왈리 축제, 각종 향기가 화들짝 들어오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우띠나 달콤하고 부드럽고 어여쁜 고아의 바다, 가시버시 떨어져 살아야 했던 왕과 왕비의 성, 별의 경로를 걸을 수 있는 부의 여신 마하 락슈미의 집 벨로르 황금사원  등은 또다시 나를 목마르게 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북인도 타지마할이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열애의 무덤이라면, 남인도 스리 미낙시 사원은 시바와 미낙시의 열애의 장소다." p76


작가에겐 징글징글 했었을 성남의 어느 거리를 나 역시 걷고 있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공감대가 생긴다. 작가의 동네가 나의 동네였다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린 시절을 보내다 한 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철철 넘친다는 서울 성의 안쪽이라는 동네의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학창 시절을 다 보내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다시 성남으로 왔다. 부러진 내 목과 아파트를 맞바꿔야 했다. 작가가 말한 평생 해야 할 숙제가 내 부모에겐 내가 아닐까. 아마도 끝나지 않을 숙제일 것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눈에 밟히는 안타까움으로 나는 나대로 갚아야 하는 보살핌으로 말이다.

바람조차 가르침을 줄 것 같은 인도는 내게 멈추지 않는 갈증이다. 이런 마음을 내비치면 늘 곤혹스러워하는 아내의 표정에 번번이 멈춰야 하는 일이지만 '언젠가는'이란 마음의 갈증은 멈추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겐 인도는 '깊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그렇게 외로움이 전해졌다. 여하튼 그동안 여러 책에서 느꼈던 강렬하고 구도스러운 인도가 아닌 쏟아지는 별에 과거의 사랑을 떠올려야 하는 외로운 인도가 그려졌다. 구도자의 해탈이 아닌 사람의 사랑이 느껴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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