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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여행/에세이] 걸스 인 도쿄 - 그녀들이 도쿄를 즐기는 방법

by 두목의진심 2017.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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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히라가나를 넘어 가타카나를 외우기 시작하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은 줄곧 가보고 싶은 곳이기만 했다. 애니메이션 속 거리를 누비고 싶지만 보행이 쉽지 않은 나로서는 여행은, 특히나 해외여행은 책으로 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걸스 인 도쿄>는 14명의 이방인으로 혹은 아직은 소녀처럼 낯섬에 대한 설렘을 꿈꾸는 여행자로 머물거나 스치면서 걷고 느끼고 품은 그녀들이 들려주는 도쿄의 34가지 이야기다. 수다스럽지만 수다스럽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것처럼 멈춰버린 페이지에서 난 어디에 있는지 흐려진다. 나도 그곳에 있고 싶다. 그리고 일본 내의 료칸이나 먹거리 등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는 잇큐닷컴 같은 꽤 쓸만한 정보를 포함한 그녀들의 장소도 담겨있다.

 

"수플레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커피에 내 기분도 후아 부풀어 오른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덩달아 기분이 부풀어 오른다. 커피에 대한 그녀의 철학까지 느낄 수 있었던 시부야의 특별한 찻집, 챠테이 하토우의 묘한 매력이 궁금해지고 "5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식사를 같이 했던 사람과의 가장 낯선 점심이었다."라는 그녀의 말이 꽤나 쓸쓸하게 들렸던 파크 하얏트 도쿄는 좀 럭셔리한 장소라는 느낌과 여행자로서의 방문지치고는 사치스럽지 않을까 싶은 곳이다. 하지만 첫사랑과 마지막 이별을, 그 이별을 무뎌지게 만들 새로운 사랑을 경험한 그곳은 그녀에게는 여행자로서의 방문지가 아닐 게 분명하지 않을까.

 

 

"섬도 사람도 쉬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기에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다." p55

지친 일상의 팍팍함을 털어 낼 수 있는 '바 로지'라든가 낯선 타지에서 나만을 위한 선물이었던 맛있던 시간을 주는 '시부야 아쿠오리나'는 어떨까? 그리고 "역시 도쿄는 재미있다. 그리고 몬자야키는 맛있다."라고 할 정도로 반듯한 도심의 풍경에 지친 사람들에게 고립된 시간의 풍경과 다양한 미식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박한 섬. 쓰키시마 너무 궁금해진다. 그리고 따뜻한 공기가 멜로디에 믹스되는 그런 '시즈쿠로'도 취하게 한다.

 

"그래, 여행이 별건가, 이렇게 일상을 발걸음을 틀었을 때 시작되는 것!" p139

훌쩍 뛰어내린 지하철역에서 만난 '카페 모리'는 어쩌면 나만의 역사를 준비하는 곳일지도 모르고 "너의 하루하루가 절대로 지루하진 않을 거야"라는 말처럼 마쓰리가 펼쳐지는 동네는 모두의 축제로 들썩인다. 그래서 '코다이라시'의 여름이 뜨거울지도.

 

 

"사루비아는 내게 아틀리에이기보다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연습실이자 실험실이었다." p252

도심에서 살아야 하는, 그래서 살아갈 힘이 필요할 때 하늘에 떠있는 도심 속 라퓨타인 '페데스트리안 데크'에 가고 싶고 잠들어 깨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감성의 소유자인 나는 '도키와스 기념관'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또 나를 나이게 존재하게 하는 곳, 신의 언덕이 존재하는 곳. 일방통행 길이 바뀌듯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곳인 '가구라자카' 역시 나를 붙잡고 센과 치히로의 유마치 골목이나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주는 곳, '기치료지'의 어슬렁거리는 하루 산책이 하고 싶다.

 

"취향이란 언제나 돌고 돌아 한 가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변덕을 부리게 마련인데, 언제나 나를 본연의 모습으로 초기화시켜주는 노래들이 있다." p322

애니메이터로 밥 먹듯이 밤샘 작업을 할 때, 그러니까 아내와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나란히 앉아 밤샘 작업을 하며 이어폰을 한쪽씩 꼽고 들었던 레드 제팬의 '앤드 리스 러브'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시모노타자와'의 밤거리를 따라 아내와 손꼽잡고 걷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낯선 여행지, 낯선 거리를 걸으며 이방인의 두려움이 채 가시기 전에 길을 묻는 현지인을 만난다는 기분은 어떨까? 타인의 여행을 보며 셀레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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